공리주의의 핵심 사상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고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공리주의를 주장한 제러미 벤담은 죽어서까지도 공리주의의 핵심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그의 사상은 '오토 아이콘'으로 오늘날까지도 강렬하게 전달되고 있다.
제러미 벤담은 1832년 6월 6일, 84세의 나이로 런던에서 사망하였다. 벤담은 죽기 일주일 전, 유언장에서 자신이 죽으면 시신을 화장하지 않고 '오토 아이콘(Auto Icon)' 처리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오토 아이콘은 시신을 그대로 보존하여 전시하거나, 해부 실습에 이용하는 등 사회적 공헌을 하는데 사용하는 것이다. 벤담은 자신의 시신이 후대의 철학자들에게 학문적 영감과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오토 아이콘화했다.
당시 사회는 시신의 전시와 해부 등은 살인범에 대한 형벌로 간주하며 해부를 터부시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벤담 이후로는 과정과 절차가 상당히 용이해졌다고 한다. 벤담의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생각한다면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상당히 진보적인 사상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벤담의 유언에 따른 오토 아이콘은 다음과 같이 제작되었다.
1) 벤담의 시신을 해부하고, 미라 처리한다.
2) 평소 입던 옷과 모자를 입히고, '생각하며 앉아있는 자세'로 의자에 앉혀 지팡이를 쥐게 한다.
3) 적절한 상자나 케이스에 넣어서 전시한다.
제작이 완료된 오토 아이콘은 1850년 이후,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대학교'에 전시되었다.
불행하게도, 벤담의 오토 아이콘은 여러 번 훼손을 당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학생 운동을 하면서 주동자들이 벤담의 머리를 몇 번씩 가져갔다. 벤담의 머리는 다시 돌려받았지만, 그 과정에서 부패하게 되었고, 오토 아이콘의 머리는 밀랍으로 대체되었다.(그리고 한동안 벤담의 머리가 오토 아이콘 밑에서 함께 전시되던 기괴한 광경도 연출되었다...)
벤담의 실제 머리는 1975년까지 벤담의 발 밑에 놓여있다가, 현재는 UCL의 고고학 연구소 금고에 보관하고 있다. 지금도 가끔씩 영국 의회에서 중요한 회의를 할 때면, 오토 아이콘을 옮겨서 회의를 참관하는 의식(?)을 진행한다고 한다.
자신의 모든 삶을 공리주의에 바친 철학자다운 일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