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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평범한 삶에 대하여 - 도시국가 대한민국





    오늘날 대한민국은 전세계를 기준으로 해도 유례없는 저출산 현상을 겪고 있다. 작년이 최저점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끝을 모르고 가파르게 떨어지고만 있다. 이 추세가 지속적으로 이어진다면, 2060년대에는 노년 인구와 생산 연령 인구의 인구수가 거의 비슷해진다.
      
    많은 사람이 이러한 추세가 심각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아직까지 뾰족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개개인들이 지니는 '평범한 삶에 관한 철학의 부재'도 한몫한다고 생각된다.
      
    다양한 통계자료와 함께 우리나라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한다.

    결혼하지 않는 사회



    혼인 건수가 점차 감소하고 있고, 그에 반비례하여 평균 초혼 연령도 꾸준하게 상승하고 있다. 물론 그동안의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결혼이 늦춰지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실제로 주위에서도 결혼을 계속 미루다가, 올해 들어서 많이 하는 경우를 볼 수 있었다.
      
    경험에 근거하여 이야기하자면, '결혼식'은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 상견례의 긴장감, 스드메, 수많은 혼수, 법적 절차... 생각해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다. 결혼식에 소요되는 노력과 비용, 인맥 관리 등 이 모든 것을 무사히 마치고, 별탈 없이 결혼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결혼을 왜 하는 것일까?
    크게 세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사랑하는 배우자와의 행복한 미래', '부모님의 압박', '(미래의 자식에 의한) 노후 보장'
      
    배우자와의 행복한 미래는 경제적 안정으로 갖춰질 수 있다.
    "가난이 대문으로 들어오면, 사랑은 창문으로 나간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돈과 관련된 현실적인 문제에서는 냉담할 수 밖에 없다. 결혼을 앞두고서, 결혼식에 필요한 비용과 주거 문제는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높은 벽을 느끼게 된다.
      
    자식이 늦은 나이까지 결혼하지 않으면, 가족모임 때마다 부모님의 압박을 받곤 한다. 그러다보니 결혼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하기보단, 결혼 적령기에 만나고 있는 사람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부모님의 눈치에 의해 마지못해(?) 결혼을 하더라도, 무언의 압박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결혼 전에는 알지 못했던) 가족 행사 참여, 양가 부모님 용돈 문제, 자녀 출산과 양육...
     

    미래의 자식으로부터 노후 보장을 받으려는 생각은 더욱 암담하다.

    통계에 따르면, 전체 노인 중 '독거노인'의 비율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자녀들이 독립하고, 평생을 약속했던 배우자와 사별하거나 이혼하게 되면, 남겨진 노인들은 필연적으로 고립된다. 직장에서 은퇴하고, 안정된 수입원이 없는 상황에서는 경제적으로 빈곤한 처지가 되어서 고독사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장성한 자녀들도 사회 초년생으로서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없을 수 있기 때문에 병약한 부모님들은 홀로 남겨진다. 그렇게 노쇠한 부모님들은 결국 '요양소'로 가게 되고, 그 곳에서 남은 여생을 쓸쓸히 보내게 된다.
      
    해결방안은 있을까?

    - 국민연금으로 국가에서 노인들의 생계 유지를 보장하는 것
    - 노인 재취업을 통해서 계속해서 노동을 할 수 있게 하는 것

    현실적으로 두 가지 방법 모두 여의치 않아 보안다.
      
    이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는 현재의 청년 세대는 부모 세대와는 달리 무조건적인 희생을 감내하지 않는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발달로 팍팍한 현실은 빠르게 전파되고, 알면 알수록 결혼 제도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자신의 희생보단 자신의 행복과 생존을 추구하게 되고, 점차 결혼을 망설이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아이를 낳지 않는 사회





    출생률은 연일 최저점을 기록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2021년은 0.81명, 2022년은 0.78명이다. 이는 OECD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낮은 비율이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 이어진다면, 2060년이 되어서는 인구의 절반이 노년인구가 되고, 대부분의 도시가 사라지게 된다. 이와 같은 저출산의 원인으로는 성별 갈등, 과도한 결혼 비용, 여성 경력단절 문제, 편해진 독신생활, 딩크의 확산 등으로 분석된다.
      
    서양에서는 이민자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침으로써,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러나 이민자 정책은 문화 충돌, 새로운 사회 갈등, 난민들의 범죄 등으로 여론이 좋지 않고, 부작용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이민자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면 서구 사회와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다른 정책을 펼치기엔 검증된 것이 없다.


    특히 전체적인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1인 가구'의 비율도 점차 높아지고 있는데, 이2020년 기준으로 무려 30%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평균소득의 증가, 복지제도의 확대, 사회적 시선의 변화 등으로 혼자 사는 것이 불편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된다. 1인 가구의 이유로 독신주의, (아직 결혼상대를 구하지 못한) 싱글, 이혼이나 사별 등이 있지만, '취업 준비생'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1인 가구 중 취업자 비중이 60% 정도라는 것은, 반대로 이야기하면 40% 정도는 직업이 없다는 말이다. 즉, 1인 가구의 40%가 취업 준비생이거나 학업에 열중하고 있는 학생이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안정된 직장을 갖지 못했으니, 연애나 결혼을 하기 힘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초혼 신혼부부 기준으로, 결혼만 한다면 '2년 안에' 첫 아이를 출산한다는 통계자료도 있다. 통계자료에 따른다면, 저출산 문제는 사실상 결혼을 하지 않아서 생긴다고도 파악할 수 있다. 즉, 결혼만 어떻게든 장려할 수 있다면 '출산율 반등'의 희망이 생기지 않을까?

    대한민국의 도시국가화



    이미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인구를 추월했으며, 이 추세는 현재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그에 비해 지방의 중소 도시들은 급속도로 소멸 위기를 겪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수도권으로 유입되는 인구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연령대는 20대로서, 무려 95%에 이른다고 한다.

    20대들은 교육과 구직을 목적으로 서울과 경기도, 인천으로 향하고 있다. 매출액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100대 기업들의 본사는 91%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있다. 그나마도 나머지 기업들은 지방의 광역시에 위치해있다.  즉,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상경해야 하는 실정인 것이다.
      
    수도권에 인구가 집중될수록, 그에 비례하여 가파르게 각종 분야의 경쟁률도 심화되고 있다. 끝을 모르고 증가하는 주거비, 기업 본사들의 수도권 이전 등 수도권 중심현상은 나날이 확대되고 있다. 자연스럽게 경쟁에서 밀리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게 되었다. 자신의 삶조차 여유있게 누릴 수 없는 사람은 당연하게도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을 것이다.


    문화 컨텐츠와 관련해서도 비수도권 지역에 좋은 통계는 보이지 않는다. 서울을 기준으로 600점 만점을 둔다면, 경기도도 149점이고, 내가 살고 있는 경북은 45점 밖에 되지 않는다. 공연, 연극, 음악 등 제대로 된 예술 활동을 즐기기 위해선 서울로 가야한다. 사실상 지방 사람들은 여가시간에 즐길 수 있는 문화 활동마저 거세된 상황인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고려한다면, 대한민국은 사실상 서울, 경기도, 인천의 수도권 중심의 도시국가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수도권 중심의 발달을 멈추는 것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행위일 것이다. 현실적으로 모든 지방의 중소 도시를 동시에 균형있게 발전시킬 수 없다. 그렇다면, '지방 광역시'를 각 지역의 허브로 하여, 광역시를 우선적으로 개발한다면 상황이 조금 나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

    평범한 삶의 어려움

      
    '평범한 삶'이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다들 아래와 같은 기준을 제시할 것이다.

    - 의식주를 걱정하지 않는 삶
    - 적당한 직장에 다니고 있는 삶
    - 취미 활동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있는 삶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면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다.

    - 집은 국민평수인 '34평'의 아파트  
    - 차는 3~4인 가구가 모두 탈 수 있는 적당한 중~대형차  
    - 1~2년에 한 번씩은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 여유  
    - 빚은 있지만 생계에 큰 지장은 없는 정도  
    - 안정된 월급을 받고 있으며,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있는 상태  
      
    사실 이러한 '평범한 삶의 기준'은 보기보다 문턱이 은근히 높은 편이다.


    임금근로자의 평균 소득은 309만 원, 이를 중위소득으로 변형하면 '234만 원'이다.
    즉, 평범한 우리나라의 임금근로자는 2~300만 원의 월급을 받는 것이다. 절대적인 평균치로만 계산한다면 평범한 삶은 다음과 같다.

    5등급의 수능 성적, 지방대학교 졸업, 중소기업 취직, 월 200만 원대의 수입.
    처음에 제시한 '평범한 삶의 기준'과 비교한다면 자칫 초라해보일 수 있는 수치이다.

    사실 위의 기준은 상위 2~30%는 되야 젊은 부부들이 오롯이 갖출 수 있는 조건들이다.
    우리나라는 천연자원이 없어서, 외국으로부터 자원을 수입하여 제조 후 판매하는 제조업 국가이다. 하지만 제조업에 종사하는 사람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이 생산직에 종사하는데, '블루칼라 노동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이처럼 '평범한 삶'의 기준이 상당히 높아서, 그렇지 못한 절대 다수의 사람에 대한 배려가 너무나 부족하다.
      
    '평범함'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바꾸고, 가치관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누적된 사회적 편견과 고정관념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상경한 젊은이들.
    끝없는 경쟁과 높은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고통받는 사람들.
    그보다 넘기 힘든 벽은 우리가 지니는 '평범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사회적 인식에 대한 보편적 담론이 확보되기 위해선, 단기적인 성과보단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빠른 사회 발전에 비해서 비교적 빈곤한 '철학'을 지니고 있다. 철학은 하루아침에 생길 수 없다. 철저한 자기반성과 객관적인 시선이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회 현상을 냉정히 바라보면서, 동시에 따뜻한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은 오직 교육의 힘뿐이다.
    교육을 통해 우리 사회가 치유될 것이라고 믿고, 매 시간 의미있는 수업을 해야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