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는 대학생 때 과제를 위해서 처음 읽어보았다. 생물학에 크게 관심이 없었고, 생각보다 내용이 어렵게 느껴져서 읽기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최근 과학에 늦바람이 들어서, 물리학과 진화 생물학, 뇌 과학 관련 서적을 많이 읽고 있다. 대학 시절 『만들어진 신』을 인상깊게 읽기도 했고, 다시 읽어보면 감회가 새롭지 않을까 싶어서 정독해보았다. 그리고 과거에는 느끼지 못했던 지적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최근 생활과 윤리 교육과정에서도 '신경 윤리학'과 '진화 윤리학'이 다루어지는 등, 도덕과 과학을 연결시키려는 시도가 많아지고 있다. 『이기적 유전자』는 비슷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피터 싱어의 『사회생물학과 윤리학』에 비해 '생물학' 자체에 초점을 두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사회생물학과 윤리학』을 먼저 읽어보고, 『이기적 유전자』를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어떤 행성에서 지적 생물이 성숙했다고 말할 수 있는 때는 그 생물이 자기의 존재 이유를 처음으로 알아냈을 때다."
『이기적 유전자』에서 '이기적'이라는 표현은 통상 사전적으로 사용되는 의미와 다르다. 즉,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생존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스스로의 복제물을 늘리는 것'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독자적인 이론을 제시하기보단, 대중 교양서로서 당시의 진화 생물학과 관련된 여러 연구를 집대성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인지 최대한 친절하게 진화 생물학적 용어를 풀어 사용하려고 했지만, 조금은 어렵게 느껴졌다. 출간 40주년을 맞는 지금까지도 조금도 책 내용을 수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엄청난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
인간의 모든 행동이 유전자에 의해 정해져있다는 염세적인 시선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만이 가진 능력으로 본능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내용으로 마무리하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사람은 왜 존재하는가?
사람을 비롯한 모든 동물은 유전자가 만들어 낸 기계이다. 우리의 유전자는 이기적 행동을 지시하지만, 전 생애동안 반드시 그 유전자에 복종하는 것은 아니다. 겉보기에 이타적인 행위는 생존가능성에 근거할 때 실제로는 이기주의가 둔갑한 경우가 많다.
생물이 종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는 '집단 선택론자'들의 주장은 잘못되었다. 이는 이타적 자기희생이 보통 새끼에게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비약시킨 잘못된 결론이다. 집단 선택설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도덕적, 정치적 이상과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이기성의 기본 단위는 유전자에서 비롯되므로, 생명의 기원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자기 복제자
세상은 이름을 붙일 수 있을 만큼 지속적이고 흔한 '안정자'라는 원자의 집단으로 가득 차 있다.
생명 탄생 이전의 지구는 물, 이산화탄소, 메탄, 암모니아 등의 화학 원료가 풍부하게 존재했다.
화학자들은 초기 지구의 상태를 재현하기 위해 화학 원료들을 플라스크에 넣고, 원시 번개를 모방한 자외선과 전기방전을 가했다. 에너지원을 가한 뒤, 2~3주가 지나면 단백질을 구성하는 요소인 '아미노산'과 DNA의 구성요소인 '퓨린'과 '피리미딘'이 생성됐다. 이렇게 3~40억년 전 태양의 자외선으로부터 '원시 수프'가 만들어졌고, 점차 결합하여 큰 분자가 되었다.
특정 시점에 우연히 자신 스스로의 복제물을 만드는 분자가 발생했다. '자기 복제자'들은 원시 수프 속의 구성요소들과 결합하여, 바닷 속에 빠른 속도로 퍼지게 되었다. 자기 복제자들의 자기복제 과정에서 오류가 생기고, 오류가 점차 확대되면서 변종 개체군으로 채워졌다. 점점 수명, 다산성, 복제의 정확도 측면에서 우수한 자기 복제자들이 생존에 유리해졌다.
자기 복제자가 점점 많아지면서, 원시 수프 안의 분자들이 점점 소진되었다. 이에 따라 한정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자기 복제자 간의 경쟁이 시작되었다. 경쟁을 통해 살아남은 자기 복제자는 '생존기계'를 축조했을 것이며, 점점 더 커지고 정교해졌다. 자기 복제자들은 오늘날 '유전자'라는 이름으로 모든 생명체 안에 있다.
불멸의 코일
모든 존재는 다양한 외형을 지닌 생존기계이지만, 기본적인 화학 구성은 다소 균일하다. 즉, 유전자는 모두 동일한 종류의 분자이며, 모든 존재는 'DNA'라고 불리는 분자를 위한 생존기계이다.
DNA는 '뉴클레오티드'라고 불리는 작은 단위의 분자로 구성된 긴 사슬이다. DNA 분자는 불멸의 코일인 '이중 나선'으로 되어있고, 'A∙T∙C∙G'라는 네 종류로 구성된다. A∙T∙C∙G는 모든 동식물이 동일하지만, A∙T∙C∙G가 연결되는 순서가 다르다.
자신의 염색체는 부모 세대 염색체의 일부를 모아 만들어진 것으로,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존재이다. 염색체는 나머지 모든 유전물질과 함께 자기복제를 시작하고, 자식을 만들 때 상대 측 염색체 일부와 교환된다. 새롭게 만들어진 염색체는 이전보다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지만, 전과 아주 다르고 유일하다.
유전자는 죽을 운명의 몸이 노쇠하면, 죽기 전에 그 몸을 버리고 세대를 거쳐 몸에서 몸으로 옮겨간다. 개체는 자연선택의 중요한 단위가 되기에는 너무 크고, 수명이 짧으며, 불안정하다. 그러나 유전자는 교차에 의해서도 파괴되지 않고, 자기복제되며, 파트너를 바꾸며 영원히 살아간다.
유전자는 매우 복잡한 방법으로 외부환경과 협력하고, 상호작용을 한다. 좋은 유전자라고 하더라도, 나쁜 유전자의 영향과 외부 환경에 의해 파괴될 수 있다. 따라서 상호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특정 유전자들이 생존에 유리할 수 있다.
DNA의 진정한 목적은 생존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따라서 유전자 단위에서 비합리적인 것은 없다. 진화란 유전자 풀 속에서 어떤 유전자의 수가 늘어나고 줄어드는 과정이다.
유전자 기계
최초의 생존기계는 경쟁자들의 폭격으로부터 유전자를 지키는 벽에 불과했다.
햇빛의 영향으로 축적된 유기물 먹이가 점점 사라져가면서 생존기계 간 생존 방식이 점차 달라졌다. 식물이라 불리는 생존기계는 스스로 직접 햇빛을 사용하며 복잡한 분자를 만들어냈다. 동물이라 불리는 생존기계는 다른 존재를 먹으면서 식물의 화학적 노동을 가로챘다.
식물과는 달리, 동물은 가역적이고 무한히 반복적이며,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진화시켰다. 동물의 뉴런은 수 십만개의 다른 성분과 연결될 수 있고, 인간의 뇌에는 수 십억개의 뉴런이 존재한다. 뉴런의 축삭돌기 가닥이 모여 신경을 형성하고, 신경은 몸의 한 부분에서 다른 부분으로 메시지를 운반한다. 뇌는 이런 방식으로 근수축의 제어와 조정을 통해서 생존기계의 성공에 기여한다.
생존기계의 행동은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극히 단순하며, 목적의식이 있는 듯이 행동한다. 유전자는 생존기계의 체제를 만드는 등, 컴퓨터 프로그래머처럼 간접적으로 자기생존기계의 행동을 제어한다. 유전자는 자신을 대신할 컴퓨터를 조립하고, 우발적 사건들에 대처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만든다. 세상이 복잡하여 예측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유전자는 뇌가 평균적으로 이득이 될 수 있는 결정을 내리도록 한다. 예측불허인 환경에서 예측을 하기 위해 유전자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학습 능력'을 만드는 것이다.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뇌는 마음 속으로 생생하게 그려보고, 추상적인 개념을 상상하고 조작한다.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능력의 진화는 주관적 의식의 진화를 초래했다. 실행의 결정권을 갖는 생존기계가 의식을 가지게 됨으로써 궁극적 주인인 유전자로부터 해방되었다.
공격 - 안정성과 이기적 기계
가족이 아닌 다른 생존기계는 한 생존기계의 입장에서 방해물이거나 이용대상일 뿐이다.생존기계는 다양한 방법으로 다른 생존기계에 영향을 주고, 서로의 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동물학자 '메이너스 스미스'는 게임 이론을 바탕으로 한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ESS)'을 소개한다. ESS는 미리 프로그램된 행동방침으로, '생존을 위해 개체군 대부분이 채택하고 있는 전략'이다.
다른 유전자 간의 싸움으로 이득을 본 유전자의 개체 수가 늘어난다. 이 때, 반대 유전자가 싸움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와 다시 번성하게 된다. 이러한 ESS의 과정을 통해 각 유전자들은 서로 간에 안정된 비율에 이르게 된다.
전투 능력의 차이, 이익의 차이, 임의적인 비대칭성 등으로 인해 ESS가 진화할 수 있다. 동족끼리 잡아먹는 전략은 불안정하고, 보복의 위험도 크기 때문에 ESS라고 할 수 없다. 다른 종 간의 상호작용은 더 큰 비대칭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상대에 따라 공격하거나 도망가는 ESS가 생긴다. 이처럼 ESS는 독립된 이기적 실체가 어떻게 조직화된 전체를 닮게 되는 지 가르쳐준다.
유전자의 행동 방식
'이기적 유전자'의 목적은 생존하는 장소인 몸에 프로그램 짜는 것을 도와서, 유전자 풀 속에 수를 늘리는 것이다.
특정한 유전자를 하나 갖고 있다면, '감수분열'에 의해 자식이 이를 갖게 될 확률은 50%이다. 혈연자 간의 공동 조상을 밝히고, 세대 간격을 센 다음, 그 조상에 기인한 '근연도'를 계산한다. 근연도를 계산한 뒤, 공동 조상의 수를 곱하면, 유전적으로 닮은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
가까운 혈연 관계일수록 '혈연 선택'이라는 가족 내 이타주의가 강하게 작용한다. 유전적으로 보았을 때, 할아버지∙할머니와 손자가 서로에게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유전자의 1/4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한 개체는 보험 회계사처럼 다른 개체의 기대수명을 자신과 비교하고, 감수해야 할 위험도를 판단한다. 뛰어난 기억력을 지닌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야생동물들도 친척들을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야생동물들의 친척 식별은 가끔씩 오류가 일어날 수 있다. 예를 들면, 뻐꾸기는 다른 새의 둥지에 고의적으로 산란하며, 다른 부모새가 자신의 새끼를 돌보게끔 한다.
가족 계획
'아이 낳기'와 '아이 키우기' 결정이 이어지는 것은 너무나도 흔한 일이기 때문에, 이 둘을 혼동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아이 낳기와 아이 키우기는 각자 다른 편에 두어야 한다.
'윈 에드워즈'는 개개의 동물은 집단 전체의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스스로의 출생률을 제한한다고 가정한다. 그는 개체가 자기 출생률을 제한하는 집단은 구성원의 증식이 빠른 집단에 비해 절멸 가능성이 적다고 생각했다.
동물들이 자신의 영역을 얻는 것은 번식할 수 있는 티켓을 얻는 것과 같다. 이에 따라 동물들은 영역에 대한 형식적인 다툼을 이용하며 개체를 제한한다. 또한, 많은 동물은 큰 무리 속에서 지내는데, 이는 개체군 밀도의 추정을 보다 쉽게 하기 위해서이다.
'데이비드 랙'에 따르면, 많은 알을 낳는 것은 아이를 돌보는 효율이 감소하기 때문에 '최적의 한 배 알 수'가 존재한다고 본다. 새끼를 과다 출산하는 개체는 어미가 신경을 못 쓰게 되어 오히려 살아남는 개체가 거의 없게 되어 생존에 불리하다. 즉, 개체의 부모 동물은 자기 자손의 출생률을 최적화하기 위해 가족 계획을 실행하는 것이다.
세대 간의 전쟁
어미는 의도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을 불균등하게 투자하여, 자식을 편애할 수 있다.
어미의 자식에 대한 유전적 근연도는 모든 자식에게 1/2로 같기 때문에 유전적으로 편애할 근거는 없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자기 자원의 상당 부분을 다른 자식에게 투자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제반조건이 같다면, 형제자매들 간에는 모두 자신에게 더 많이 투자하기를 바랄 것이다. 앞으로 태어날 자식이 받을 불이익이 현재의 자식이 받는 이익의 두 배 이상이 되면 어미는 그 자식에게 젖을 주지 않는다. 이에 따라, 자식은 부모를 속여서 먹이를 많이 먹으려고 할 것이고, 부모는 속으려 하지 않는 세대 간의 전쟁이 발생한다. 이 때, 자식 세대가 속임수를 쓴다는 것은 윤리적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선택'에서 논하는 것이다.
암수의 전쟁
유전자의 50%를 공유하는 부모자식 사이에도 이해의 대립이 있듯이, 짝 사이의 다툼도 격렬하다.
이상적으로 개체가 바라는 것은 가능한 많은 이성과 교제하고, 자식 양육은 상대에게 전적으로 떠맡기는 것이다. 암컷의 생식세포는 크고, 수컷의 생식세포는 암컷에 비해 매우 작고 수가 많다. 따라서 난자의 양분의 양이 훨씬 많기 때문에 정자는 유전자를 빨리 난자로 운반하는데 주력한다.
개개의 몸은 이기적 기계이므로, 몸 속 유전자를 위해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고자 한다. 가능한 많은 수의 자식이 생존하기 위해선 파트너가 양육 부담을 많이 지고, 자신은 다른 파트너와 새로운 자식을 가져야 한다.
암컷은 크고 영양소가 풍부한 난자의 형태로, 수컷보다 많은 투자를 하기 때문에 보통 수컷이 자식을 버릴 확률이 높다. 짝이 암컷을 착취하는 정도를 줄이기 위해, 암컷은 교미를 거부함으로써 유리한 흥정을 하고자 한다. 예를 들면, 긴 약혼 기간을 강요함으로써 변덕스러운 구혼자를 솎아내고, 인내를 인정받은 가정적인 수컷과 교미하고자 한다. 이에 따라, 수컷은 암컷에게 많은 공을 들였고, 다른 암컷도 '지연 전략'을 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암컷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암컷은 남성다운 수컷을 선택하기 위해, 모든 주의를 집중하여 단서를 찾은 뒤 교미를 허락한다. 수컷이 암컷으로부터 안정받으려는 사회에서 어미는 아들을 매력적으로 성장하도록 만들고자 한다. 매력적이고 남성적인 수컷과 교미한 암컷이 낳은 아들은 다음 세대에도 매력적일 가능성이 높다. 즉, 암컷은 수컷보다 교미에서 잃는 손실이 많기 때문에 신중해지는 것이다.
내 등을 긁어줘, 나는 네 등 위에 올라탈 테니
동물이 무리를 지어 산다면, 유전자는 투입된 것보다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집단생활은 포식자에게 먹히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무리의 가장자리에 위치하는 것은 위험하므로, 중심으로 비집고 들어오려는 과정에서 무리가 점점 밀집된다. 새의 경계음은 발신지점을 알아차리기 힘들어 발각당할 확률이 낮고, 무리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이익을 얻는다. 톰슨가젤의 높이뛰기 행동도 실은 자신보다 높이 뛸 수 없는 다른 개체를 쫓으라는 일종의 허세에 불과하다. 벌이나 개미와 같은 '벌목 곤충'들은 자신의 유전자 사본을 만드는 대신, 유전자 생산의 효율이 좋은 어미를 이용한다.
서로가 동시에 이익을 주고 받는다면 협력이 진화할 것이지만, 이익의 제공과 보답 사이에 시간차가 생기면 문제가 발생한다. 몸에 있는 기생충을 서로 떼어주는 '호혜적 이타주의'는 서로를 개체로서 식별하고 기억하는 종에서만 가능하다. 인간은 '자연선택'으로 사기꾼을 잘 알아내고, 남에게 잘 처신하는 능력이 발달하게 되었다.
밈 - 새로운 복제자
인간은 유전적 전달과 유사한 '문화적 전달'로 인해 특수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인간의 문화적 진화는 언어, 의복, 음식, 의식, 관습, 예술, 건축, 기술, 공학 등 역사를 통해 매우 빠르게 이루어진다. 인간의 문화는 유전자와 유사하게 자기 복제를 하며 변화하기 때문에 이를 지칭하는 새로운 단어가 필요하다. 이는 모방이라는 그리스어 어근 'mimeme'과 유전자 'gene'을 통해 '밈(meme)'으로 지칭하고자 한다.
'밈'은 밈 풀에서 퍼져나가며, 모방과 같은 과정으로 뇌에서 뇌로 건너다닌다. 유전자는 뇌를 만들어냄으로써 최초의 밈이 등장할 수 있는 '수프'를 마련했고, 밈은 빠르고 독자적으로 진화를 시작했다.
유전자가 맹목적인 자연선택의 작용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처럼, 밈도 TV, 게시판, 신문 등의 공간에서 경쟁한다. 건축, 의식, 율법, 음악, 예술, 전통이 조직화된 교회를 돕는 것처럼, 밈은 서로 결합하여 각각의 생존에 도움을 준다. 예를 들면, '지옥불'이라는 아이디어는 '신'이라는 밈과 결합되어 생존력이 강화될 수 있다.
유전자와는 달리, 인간에게는 의식적인 선견지명이 있다. 유전자와 밈은 당장의 이기적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득이더라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성질이 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이지만, 의식적인 선견지명인 '상상력'을 통해 최악의 상황에서 우릴 구해준다. 따라서 유일하게 인간만이 이기적 유전자와 밈에게 반항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마음씨 좋은 놈이 일등한다
게임을 하는 두 상대에게 협력과 배신이라고 표시된 카드를 동시에 내도록 하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 있다. 죄수의 딜레마에선 배신의 유혹이 상호 협력의 포상보다 크고, 상호 배신의 벌은 상호 협력의 포상보다 크다. 상대방도 똑같은 논리로 결론을 내리기 때문에, 항상 배신카드를 내는 것이 최선의 수가 될 수 있다.
두 사람이 협력만 하면 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서로 간에 신뢰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반복된 죄수의 딜레마'는 죄수의 딜레마를 무한정 반복함으로써 서로에게 신뢰와 불신을 쌓을 수 있도록 한다. 서로의 몸에 있는 진드기를 잡아주는 새들은 일종의 반복된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하는 것이다. 반복 게임은 다수의 전략적 선택의 여지를 제공하지만, 무엇이 최선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액설로드'는 전문가들에게 14가지의 전략을 제안받았고, 랜덤을 추가한 15가지 전략으로 토너먼트를 진행했다. 그 중, 승리를 거둔 전략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Tit for Tat)' 이었다. TFT는 처음에는 협력으로 시작하고, 그 이후에는 상대의 앞 수를 흉내내는 단순한 전략이다. TFT는 관대한 전략으로, 배신자에 대해선 가볍게 벌하고, 그 후에는 과거를 씻은 듯이 잊은 것처럼 행동한다.
이어서, 액설로드는 응모를 받은 62개 전략과 랜덤을 추가한 63가지 전략으로 토너먼트를 진행했다. 이 토너먼트에서도 TFT가 또 다시 승자가 되었고, 전체적으로 '마음씨 좋은 전략'들이 '못된 전략'보다 성공적이었다.
마음씨 좋은 전략들은 협력만 하기 때문에 서로 구별하기는 어렵지만, 돌연변이 전략이 침입하면 취약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TFT와 유사한 '의심많은 TFT'라는 혼합 전략을 고찰했다.(처음에 항상 배신하고, 이후엔 TFT와 동일한 전략)
액설로드는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ESS)'을 바탕으로, TFT가 우위를 점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처음부터 TFT가 번영하긴 어렵지만, 우연한 계기만 주어진다면 금세 집단이 TFT쪽으로 미끄러질 수 있다. 자연계에서 국소적 집합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유전적인 인연인 '혈연'을 통해서 가능하다. 각 개체는 출생 장소 근처에서 살려는 '점성'이 있으며, 자신의 혈연 관계들과 가까이 살고자 한다. 작은 지역 집단을 이루어 서로 협력하는 TFT 개체들이 번영함으로써 점점 큰 지역 집단으로 성장하게 된다.
게임이 끝나는 시점을 알게 되면, 두 상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마지막 라운드는 반드시 배신한다. 따라서 반복된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 지속될 수록 더 마음씨 좋고, 더 관대하고, 덜 시샘하게 된다.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부대와 독일 부대의 '우리도 살고 남도 살리자 운동', 무화과 말벌 간의 협력, 농어의 성 역할 교대, 흡혈박쥐의 헌혈 등의 사례에서 반복된 죄수의 딜레마를 파악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사례를 통해 이기적 유전자에 지배받으면서도, 마음씨 좋은 놈이 일 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전자의 긴 팔
성공적인 유전자란 다른 유전자들이 각자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환경에서 그 배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유전자이다. 이 때, 하나의 유전자가 대립 유전자에 비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표현형'이라고 한다.
어떤 유전자는 생물체 바깥의 세계인 '확장된 표현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를 들면, 달팽이에 기생하는 흡충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달팽이의 껍질을 두껍게 하여 번식 대신 생존에 집중하게 한다. 게에 기생하는 사쿨리나는 정소와 난소에서 영양분을 빨아먹음으로써 게가 자신의 생존에만 에너지를 사용하게 한다. 이렇게 유전자는 자신의 몸 바깥까지 팔을 펼쳐서, 다른 생물체의 표현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기생자와 숙주의 유전자 간 이해관계는 상당 부분 일치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히드라에 기생하는 클로로히드라 비리디시마는 히드라에게 산소를 공급하고, 히드라의 알을 통해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달한다.
자기 유전자가 숙주의 유전자와 운명을 같이 할 것을 열망하는 기생자는 모든 이해 관계를 숙주와 공유한다. 이와 같은 사례를 우리 유전자에 적용하면, 우리의 유전자들이 협력하는 이유는 미래로의 출구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태고의 기생자들이 합체한 것의 유물일 수도 있다.
유전자는 세대에 걸친 생물 개체들이 유전자 자신을 퍼뜨리도록 만들기 위해 일한다. 자기 복제자인 DNA는 거대한 공동체적 생존기계인 몸이라는 운반자 속에 모인다. 자기 복제자는 스스로 행동하지 않고, 대신 모든 것을 해주는 운반자를 만든다.
제대로 된 유전자의 운반자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유전자가 미래로 전해질 수 있는 공평한 이탈경로가 있어야 한다. 또한, 유전자는 자신이 속한 무리의 다른 유전자를 희생양 삼아, 자기 개체의 번영을 이기적으로 촉진할 수 있다.
각 유전자는 별개의 이기적 유전자로서 선택되어, 딱 알맞은 세트가 존재해야만 번영할 수 있다. 따라서 세포는 무리를 지어 각각의 임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자신의 사본에 이익을 주려한다.
생물 종에 따라 다르지만, 세포 분열은 정해진 순서대로 진행되며, 생활사가 반복될 때마다 재현된다. 모든 세포가 같은 유전자를 가지기 때문에, 효율적인 생존기계를 만들기 위해 '병목형 생활사'로 서로 협력한다.
모든 생명의 원동력이자, 가장 근본적인 단위는 자기 복제자이다. 자기 복제자는 자기 복제 성공률에 의해 살아남을 수 있다. 유전자는 긴 팔을 가지고, 멀고 가까운 표현형에 영향을 미치며, 세상 전체에 균일하게 분포하고 있다. 우주의 어느 장소든, 생명이 나타나기 위해 존재해야만 하는 유일한 실체는 불멸의 자기 복제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