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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리차드 도킨스'의 도발적인 책은 저자 스스로도 밝히지만, 무신론자들을 위한 여러 논변을 제공한다. 원제목은 'The God Delusion'으로 '신이라는 망상'으로 번역되어야 하지만, 상당히 다른 의미로 번역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책 내용에 비추어 볼 때, '만들어진 신'보단 원제목인 '신이라는 망상'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어린 시절 아내는 학교를 몹시 싫어해서 차라리 퇴학당하기를 바랐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20대가 되었을 때 아내는 그 사실을 털어놓았고 장모는 깜짝 놀랐다. '그런데 왜 그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니?' 아내의 대답이 바로 이 글을 쓴 동기가 되었다. '그래도 되는 줄 몰랐어요.'"

본인은 어릴 때 (가족의 영향으로 인해)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당시에는 '신을 믿는 이유'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질문에 대해선 의문조차 가지지 않았다. 마치 밥을 먹고 잠을 자듯이, 일요일이 되면 어른들을 따라서 교회에 가고 기계적으로 예배를 드렸던 것이다.
  
도서관에서 『이기적 유전자』를 인상깊게 읽고, 같은 작가의 다른 책을 찾아보다가 문득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치열하게 설하는 '무신론'에 대해서 깊이 매료되었고, 그 이후로도 현재까지 무신론에 가까운 생각을 하고 있다.
  
리차드 도킨스는 본저에서 엄청나게 방대한 사료와 과학적 지식 등으로 치밀하게 종교를 논박한다. 조금의 허점도 보이기 싫은지 편집증적인 논증을 펼치고 있으며, 공격적인 표현을 종종 사용하기에 기존의 종교인들이 이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바꾸기에는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인상을 받았다.(애초에 제목만 보고 읽으려 하지도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종교에 조예가 깊은 사람도 리차드 도킨스의 주장을 쉽게 반박하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리차드 도킨스는 신의 존재에 대한 입장을 아래와 같이 구분한다.  
  
- 강한 유신론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100% 확신함)
- 사실상 유신론자(신이 존재한다는 확률이 아주 높지만, 100%는 아님)
- 불가지론이지만 유신론으로 기울어져있음(확신할 순 없지만, 신이 있다고 믿고 싶음)
- 정확히 50%
- 불가지론이지만 무신론으로 기울어져 있음(신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회의적인 입장)
- 사실상 무신론자(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신이 없다고 생각함)
- 강한 무신론자(신이 없다는 것을 확신함)
  
나의 입장은 '불가지론이지만 무신론으로 기울어져 있음'에 해당한다. 사실 신이라는 개념 자체가 인간이 이해하기엔 너무 거대한 개념이고, 신이 설령 존재하더라도 기존에 묘사되어 온 인간을 닮은 인격신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리차드 도킨스는 신앙심의 효능을 증명하려한 '프랜시스 골턴'과 '러셀 스태너드'의 실험을 소개한다. 일반적으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기도를 많이 받으면 축복을 받기 때문에 더욱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의 실험 결과는 기도를 받는 쪽과 받지 않는 쪽은 별다른 건강 차이가 없음을 증명한다.

1. 왕실 가족은 다른 가족들보다 기도를 많이 받지만, 일반 가족에 비해 유의미한 건강 차이를 엿볼 수 없었다.
2. 오히려 기도를 받는다는 것을 안 사람들이 불안과 스트레스로 더 심한 합병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었다.
  
그저 기도만 하고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상황은 악화될 것이다. 시험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지만 시험을 잘 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과 유사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막연하게 생각하던 것을 누군가는 직접 실험을 해보았다고 하니, 머릿속에서 분명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리차드 도킨스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 존재 증명'을 반박한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증명 방식은 상당히 '그럴싸하게' 보이지만, 간단한 논증에 의해 맥없이 무너진다.
  
1. 부동의 원동자: 최초의 움직임을 일으키는 존재가 신이다.  
2. 원인 없는 원인: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어야 하며, 최초의 원인이 바로 신이다.  
3. 우주론적 논증: 우주에 물체들을 출현시킨 무언가가 있을텐데, 그것이 신이다.  
4. 정도 논증: 완벽성의 기준이 될 어떤 최대값이 있어야 하는데, 최대값이 신이다.  
5. 목적론적 논증: 세계의 사물은 설계된 것처럼 정교하며, 이러한 설계자가 신이다.  
  
- 1~3에 대한 반박: 오직 신만이 '무한 회귀'를 벗어나 있다는 '무한 회귀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설령 그런 신이 존재하더라도, 그런 신에게 '전지전능'이나 '인간다움'이라는 추가적인 속성을 부여할 필요가 없다.

- 4에 대한 반박: '완벽성'이 아니라 '냄새'와 같은 다른 속성들로 예를 들어도 같은 결론이 도출된다.

- 5에 대한 반박: 지적 설계에 대한 반박(아래 참고)


토마스 아퀴나스 이외에도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여러 시도들이 존재한다. 리차드 도킨스는 그러한 시도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1. 안셀무스의 신 존재 증명: 더 없이 위대한 존재를 상상할 수 있다. 위대하기 때문에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 존재하면서 전지전능한 것 보다, 존재하지 않으며 전지전능한 것이 더욱 위대한 존재이다. 따라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2. 파스칼의 내기: 신이 존재할 확률이 아무리 낮아도, 잘못 추정했을 때 닥칠 대가가 훨씬 크기 때문에 신을 믿는 것이 이득이다.
→ 전지전능한 신은 가짜 신앙심을 꿰뚫어 볼 것이다. 그리고 야훼(기독교의 신)가 아닌 다른 신이 존재한다면 야훼를 믿었다는 사실만으로 지옥에 갈 것이다. 따라서 무슨 신을 믿어야 할 지 확신할 수 없다.(신은 차라리 정직한 회의주의를 높게 쳐 줄 것이다.)
  
3. 지적 설계: 생명이 지구에 출현할 확률은 태풍이 운좋게 보잉 747을 조립한 확률과 다르지 않다. 자연현상은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가능성이 희박하고, 복잡하고, 아름답고, 경의로운 것이다.
→ 실제로는 환원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하지 않은, 수많은 중간단계의 화석들이 존재한다. 지적 설계를 가정하는 것은 과학의 발전을 저해한다.
  
4. 골디락스 영역: 지구는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아서 물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지구만이 생명체들이 살아가기에 적합한 환경을 지닌다. 즉, 신이 세계를 만들었으므로, 인간에게 이롭도록 모든 세세한 사항을 꼼꼼하게 설정한 것이다.
→ 가용 행성은 전 우주에 엄청나게 많이 존재한다. 생명체가 환경에 유리하게 살아남도록 진화한 것이지, 환경이 미리 갖춰진 것이 아니다.

일부 사람들은 신으로부터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신이 우리에게 메시지를 발신한다면, 우리의 뇌가 이를 수신할 것이다. 현대 과학은 뇌를 스캔할 수 있기 때문에 신의 계시는 결국 과학과 관련이 있게 된다. 따라서 신이 수많은 사람들과 동시에 소통할 수 있다면, 신은 결코 단순한 존재라고 말할 수 없다.

종교는 생존을 지향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심리와 결부되어 무작위적으로 진화한 것이다. 영생, 천국, 신비, 아름다움, 신앙심 등은 절대적인 생존기를 지니기 때문에 번성하고 생존할 수 있다. 즉, 이러한 '종교적인 밈'들은 인간 심리의 보편적인 특성에 힘입어 생존하게 된 것이다.
  
태평양 남부의 '화물 숭배 의식'은 종교가 무(無)에서 출현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현대적인 모형이다. 현대 문명과 괴리된 섬 주민들이 자신들의 섬으로 이주한 불가사의한 물건(화물)들을 보고 숭배 의식을 펼쳤다. 이러한 숭배 의식은 놀라운 속도로 출현하고, 출현 과정이 궤적을 감추고, 비슷한 숭배 의식이 다양한 섬에서 독자적으로 출현한다. 그리고 다른 오래된 종교들과 유사하게 발전한다.

리차드 도킨스는 '화물 숭배 의식'을 설명하면서 아서 클라스가 남긴 유명한 말을 덧붙인다.
"충분히 발전한 기술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


리차드 도킨스는 '성경'도 아래와 같은 이유를 제시하며 비판한다.
  
1. 성경의 상당 부분은 수많은 익명의 저자, 편집자, 필사자 등이 9세기에 걸친 문서들을 혼란스럽게 엮은 것이다.
2. 창조와 내세를 생각하는 신성한 존재가 인간의 비행같은 하찮은 일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3. 구약성경에서는 살해, 아동살인, 제물, 대량학살 등 여러가지 끔찍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4. 고문과 처형 기구(십자가)를 신성한 상징으로 채택한다.
5. 오로지 죄에만 초점을 두고, 까마득히 먼 조상의 죄까지 물려받게 된다.
  
종교는 '구교와 신교'와 같이 꼬리표를 붙이고 아동학대를 자행한다. 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를 이단이라고 비난하며, 학교를 격리하고 분리시킨다. 그리고 이교도와의 혼인을 금기시하며, 다툼을 되물림한다.  
  
근본주의 종교는 과학적 탐구심을 적극적으로 꺾으려하며, 지성을 부패시킨다. 또한 동성애, 낙태, 인간 생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지게 한다. 신앙은 의문을 품지 않는 것이므로, 미래의 성전이나 십자군 전쟁을 위한 치명적인 무기로 자라게 될 수 있다. 너무 어려서 아직 생각을 할 수 없는 아이에게 신앙의 소유자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것은 일종의 아동학대이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신체적 학대와 정신적 학대가 있다. 학교에서는 성경을 진리로 가르치면서 잘못된 배움을 줄 수 있다. 아이들에게 종교적 꼬리표를 붙여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힘을 빼앗아버린다.

신에게서 위안을 얻기보단, 우리가 선택한 삶을 의미있고 충만하고 경이롭다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의 목숨이 하나라는 것을 인식하고, 삶을 지지하며 고양시키며 사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

현실 세계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세계가 아니라, 감각자료를 통해 조정된 하나의 모형이다. 과학은 가능성의 스펙트럼을 내다볼 때 쓰는 익숙한 좁은 창문을 왈칵 열어젖히고, 자유로운 세계를 찾아가도록 해준다.
  
이 책은 인문학과 윤리학, 철학에만 관심을 가졌던 나에게 과학 공부의 필요성을 일깨워준 책이다. 신의 존재 유무와 관계 없이, 새로운 시선에 눈을 뜨게 해줬다는 것만으로도 내게 이 책은 의미가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