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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삶에 집착하는 중생들의 어리석음 - 안수정등(岸樹井藤)

 


불교는 중생들에게 진리를 깨우쳐 주기 위해 여러 비유법을 많이 사용한다.  
  
안수(岸樹)란 언덕 위의 나무라는 뜻이고, 정등(井藤)이란 나무 아래의 우물이라는 뜻이다. 즉, 안수정등(岸樹井藤)은 중생들이 삶에 집착하는 어리석은 모습을 비유적으로 설함으로써 오늘날까지도 많은 깨달음과 가르침을 주고 있다.



한 나그네가 들판을 지나가던 중, 갑자기 사방에서 사나운 불길이 일어났다. 불길에 휩싸여 당황해하던 중, 느닷없이 굶주린 코끼리가 나그네를 향하여 사납게 달려들었다. 나그네는 코끼리를 피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도망치다가, 언덕에 있는 우물을 발견했다. 언덕 위에 있는 등나무 줄기가 우물로 연결되어있는 것을 보고, 줄기를 잡고 우물 속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우물 밑에는 커다란 독사가 혀를 낼름거리면서 입을 벌리고 있었다.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등나무 줄기를 잡고 있던 손아귀의 힘이 점점 빠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어디선가 검은 쥐가 나타나, 등나무 줄기를 갉아먹고 있었다. 검은 쥐를 몰아내자 흰 쥐가 나타나 등나무 줄기를 갉아먹고, 흰 쥐를 몰아내자 다시 검은 쥐가 나타났다.
  
그 때, 갑작스레 얼굴에 축축한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위를 올려다보니, 등나무 줄기를 타고 내려가면서 건드린 벌집에서 꿀이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윽고 나그네는 자신의 위태로움을 망각한 채, 눈을 감고 달콤한 꿀을 받아먹으며, 마침내 코끼리와 독사, 쥐를 모두 잊게 되었다.

안수정등(岸樹井藤)에서 비유하는 상징들은 다음과 같다.


대상

상징

나그네

중생

들판의 불길

욕망의 불꽃

코끼리

무상(無常, 덧없음)

등나무 줄기

생명줄

독사

삼독(三毒, 근본 번뇌[貪嗔癡])와 사대(四大, 우리 몸의 구성요소)

흰 쥐와 검은 쥐

낮과 밤

인간의 욕구


인간의 삶은 끊임없이 방황하다가, 삶의 허무함에 쫓기며 결국 깨달음을 얻지 못한 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죽게 된다. 이처럼 안수정등은 죽음이 임박해도 어리석은 중생들은 눈앞의 달콤함을 취하려 하며, 헛된 욕망에만 집착한다는 비유이다.


일제 시대, 스님이자 독립 운동가였던 용성 스님이 제자들에게 안수정등(岸樹井藤)을 설하며, 각자의 생각을 물었다. 다들 우수한 제자들이었기에, 나름대로 훌륭한 대답들이 나왔다.
  
"어젯 밤 꿈 속의 일일 뿐입니다."
"부처는 다시 부처가 될 수 없습니다."
"누가 언제 우물에 들었던가?"

용성 스님은 '전강'이라는 제자의 대답이 궁금해졌다. 당시 전강은 엿장수로서 전국을 떠도는 중이었다. 훗날, 제자 중 한 사람이 전강을 만나 스승의 질문을 전해주었다. 그러자 전강은 엿 한가닥을 엿판에 내리친 다음, 한 조각을 입에 털어놓고 말했다.

"달다."
  
사실은 들판의 불도, 코끼리도, 독사와 쥐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애초부터 우리의 삶에 고통과 두려움따윈 없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욕망의 불꽃은 꺼질 수 있다.  
  
삶을 무한한 긍정으로 바라봄으로써 지금 이 순간을 오롯이 음미하는 것. 그것이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과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