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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살아있다』

 

많은 사람이 추천하고, 베스트셀러로 꼽히고 있는 이 책의 제목을 보고, 기묘하게 이끌려서 구매하게 되었다. 어떤 줄거리와 내용도 접하지 않은 채 읽으라는 말에 다짜고짜 프롤로그부터 펴보았고, 홀리듯이 그 자리에서 다 읽었다.


"혼돈이 그 사람을 집어삼킬 것이다."
  
처음에는 소설이라고 생각했지만, 알고보니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자전적 에세이였다. 생명과학과 실존주의, 한 인물의 일대기 등 다양한 요소가 복잡하게 얽혀있으며, 추리소설의 형식도 빌려왔다. 복잡해보이는 듯한 여러 갈래가 어느새 하나의 주제를 향하고 있으며, 거대한 이야기가 모아질 때의 지적쾌감이 상당하다.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의 필력이 몹시 흡인력있으며, 번역의 질 또한 상당히 훌륭하여, 읽는데 막히는 부분이 없었다.

다만, 책의 몰입도와는 별개로, 이 책으로 전하고자 하는 저자의 결론은 다소 진부하게 느껴졌다. 과학적 방법으로 인간의 실존에 접근한다는 측면은 신선했으나, 실존주의에서 다루던 주제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과 자신의 삶을 연결해서 바라보는 갑작스러운 논리적 비약이 조금 당혹스러웠다.
  
아쉬운 점은 분명 있었지만, 근래에 보기 드문 강한 이끌림을 지닌 책이었다. 책을 읽기 전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는 용어는 이해하고 들어가면 좋을 것 같다.

*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운행한다는 '지동설'을 주장함으로써 기존의 지구 중심 세계관을 완전히 전회시켰다. 칸트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인용하며, 자신의 사상이 기존의 철학적 관념으로부터 완전히 인식을 전회시켰다고 설명하며 사용한 용어이다. 즉, 이 책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에 대한 개인적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줄거리


주인공(저자)은 어릴 때부터 '삶의 의미'에 대해서 고민하던 감수성 깊은 소녀였다. 과학자였던 아버지에게 삶의 의미에 대해서 묻자, 아버지는 퉁명스럽게 "인생은 의미가 없으며, 혼돈만이 존재한다."며 대꾸했다. 그러한 아버지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으나, '곱슬머리 남자'와의 이별을 경험하고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되었다.


인생은 정말 혼돈인 것인지, 인생이 혼돈이라면 어떤 길을 선택해야하는지 방황하면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에 관심을 가진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평생을 '분류학'에 몸담아왔던 과학자였으며, 당대 인류에게 알려진 어류의 1/5 이상에게 이름을 부여했다. 그는 스탠퍼드 대학교의 초대 총장이었으며,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었던 과학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뜻밖의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인해, 지금까지 연구했던 대부분의 표본이 파괴되는 일을 겪었다.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들이 무용지물이 되어 좌절하고 포기할 법도 한데, 데이비드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자기 일을 해냈다. 그는 결코 절망하지 않고, 남아있는 물고기 표본의 피부에 이름표를 꿰매 붙이면서 혼돈에 저항해냈다. 주인공은 데이비드를 혼돈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무엇인지 호기심을 가지고, 집요하게 탐구한다. 데이비드를 더욱 자세히 알기 위해, 데이비드가 저술한 (절판된) 회고록, 동화, 철학 에세이, 동료의 평가 등 수많은 문서를 찾는다. 그리고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통해서 자신 또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한다.

수많은 자료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도덕적 인격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데이비드는 병마에 시달리는 첫 번째 아내를 등한시했으며, 재혼하면서도 전처의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총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자신이 아끼는 측근의 성비위를 덮기 위해 관련자를 협박하여 사직하게 만들었다. 또한, 사사건건 자신과 대립해 온 (스탠퍼드 대학교를 설립한) '스탠퍼드 제인'을 독살했다는 강한 의혹도 제기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능가하는 가장 결정적인 비판 요인은 바로 '우생학'이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우생학에 경도되어, 일부 부도덕한 특징이 유전될 수 있으며 박멸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빈민, 술꾼, 환자 등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들을 '부적합자'로 간주하며, 우생학적 불임의 합법화를 적극 지지하였다.
  
데이비드는 열등한 유전자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으며, 관련 법안이 통과되어 실제로 불임시술이 자행되기도 했다. 우생학이란 독일 나치 제도 아래에서만 자행되어왔다고 생각했었는데,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미국에서도 실행되어 왔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법률은 아직 완전히 폐기되지 않은 채, 아직까지도 일부 주의 헌법 상에 존재한다고 한다.
  
불행하게도,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천벌을 받지 않았고,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편안하게 생을 마감했다. 주인공은 데이비드의 기만과 모순, 도덕적 타락에 치를 떨면서, 불임시술을 받고도 생존한 메리와 애나를 만난다. 그녀는 메리와 애나의 배려하는 삶에서 위안을 받고, 삶의 의미에 대해서 끝없이 고민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주인공은 분류학의 최신 이론에서 '어류'가 단일한 종이 아니라고 밝혀진 것을 파악했다. 다시 말해, 어류라는 큰 범주는 과학적으로 보았을 때,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어류들 간에도 수많은 복잡미묘한 차이를 지니고 있으며, 다양한 종으로 구분할 수 있다. 즉, 데이비드는 너무나 복잡한 종들을 인간의 편의를 위해 간단하게 '어류'라고만 정의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따라서 데이비드가 평생을 바쳐서 연구한 분류학은 애초에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었던 것이다.
  
데이비드는 어류와 인간의 구분을 통해, 인간이 어류보다 우월하고, 인간 중에서도 열등한 개체가 있다고 간주했다. 인간은 혼돈 속에서도 나름의 질서와 위계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의 분류학적 가치관이 뿌리채 뽑히게 되었다.
  
사실, 열등한 것은 아무 것도 없던 것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하면 무척 약하지만, 늘 환경의 변화에 적응해왔다. 하찮아보이던 생명체들도 진화라는 큰 테두리에서 보면, 각자의 개체가 최적의 환경으로 진화한 형태인 것이다. 따라서 데이비드가 그토록 강조해 온 우생학은 그저 허상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인간이 편하게 인식하기 위해 그어진 선을 통해 '이해했다'라고 착각하던 것에 지나지 않았다.
  
권위에 눌려서, 어떤 것도 의심하지 않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들. 그런 태도를 경계하면서, 우리가 익숙하게 여기는 편견을 버릴 수 있는 진정한 인식론적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절대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삶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시간이 흘러, 주인공은 어느 바에서 한 여성을 만나고 무심코 키스를 한다. 그 순간,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달은 주인공은 자신의 삶이 송두리 째 바뀌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경험한다. 그리고, 그녀는 더 이상 곱슬머리 남자를 그리워하지 않았다.
  
우리는 코페르니쿠스와 조르다노 브루노, 갈릴레오의 시대를 지나오면서, 별을 포기하고 우주를 얻었다. 그녀는 그렇게 물고기를 포기하는 대가로, 사랑이라는 모든 것을 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