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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을까? - 이스털린의 역설

 




    대부분의 사람은 인생의 최종 목적을 '행복'이라고 간주한다. 돈이 행복의 필요조건이라는 관점도 많은 사람이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행복이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친 전체적인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행복이 곧 돈은 아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통계적으로 어느 정도까지의 돈이 행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이와 관련된 연구 자료를 통해 '행복의 조건'에 관해 함께 고민해보자.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s Paradox)


      
    1974년,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교의 '리처드 이스털린' 교수는 행복과 소득 수준과 관련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미국인들의 행복과 소득 수준의 관계를 분석하기 위해 1946년부터 1970년까지의 데이터를 조사했다. 그 결과, 소득 수준이 일정 이상을 넘어서면 더 이상 소득이 늘어도 행복도가 더 이상 증가하지 않음을 발견했다.
      
    미국인들 대상으로 조사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제 3세계 국가 등 다양한 자료를 추가로 분석했다. 다른 나라 역시 미국과 유사하게도, 소득 수준이 일정 이상 넘어서면 행복도가 더 이상 증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2008년 동 대학교 와튼스쿨의 '베시 스티븐슨 교수'는 이스털린의 연구 결과를 비판했다. 그는 이스털린의 데이터보다 더욱 광범위한 132개국을 대상으로 50년 간의 자료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부유한 국가의 국민이 가난한 국가의 국민보다 행복하다고 주장했다. 즉, 낮은 소득보다 높은 소득이 행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앵거스 디턴(Angus Deaton)의 연구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네만'은 '앵거스 디턴'과 함께 2010년 '국립과학원회보'에 행복과 관련된 연구를 발표했다. 그들은 미국인 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연간 소득 75,000달러를 행복의 기준점으로 삼았다. 즉, 2022년도 기준으로 연봉 9,300만원 이상이 된다면, 더 이상 소득이 행복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부분까지만 생각해보면 생각보다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소득 수준이 높지 않다고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아래의 자료를 살펴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연봉 1억이 넘었다면 근로 소득자 소득의 상위 3%에 포함된다고 한다.
    즉, 97%의 근로 소득자가 소득 수준만으로는 행복의 필요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행복해질 수 없는걸까? 잠시 생각해보면 그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면 '소득 수준 자체'가 행복에 영향을 미치기보단, 소득 수준으로 인한 '삶의 질 향상'이 행복에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즉, 높은 소득 수준은 삶에 질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행복의 필요조건으로 간주되고 있던 것이다.

    그 외 연구들

      
    네덜란드 사회학자인 '루트 빈호벤'은 행복과 관련된 245개의 연구 결과를 종합한 '행복의 조건'이라는 논문을 통해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행복 전문가로 활동하며, 3,500개에 이르는 경험적 조사에서 얻은 20,000개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GDP 성장'과 행복은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지적했다. 즉, 통계적으로 경제 성장률이 높은 나라일수록 행복하다고 느끼는 경향이 높다는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에드 디너'는 행복의 주관적 요건과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인에 대해 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행복과 관련된 요소로 대인 관계, 개인적 기질, 일정 수준의 돈, 사회문화적 요소, 긍정적인 사고방식 등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일상 속에서 긍정적인 정서와 부정적인 정서를 경험한 정도를 조사하고, 감정 지수를 바탕으로 행복 지수를 제시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GDP에 비해서 삶의 만족도가 낮은 편에 속하였다.(77/89)

    우리나라는 1950 ~ 60년대에 비해서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어냈지만, 행복의 수준이 그만큼은 증가하지 않은 것 같다. 'GDP 성장'과 '사회적 관계'가 행복의 주요 요소라면, 우리가 그렇게 행복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사회 전체의 부는 증가했지만,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일까? 사회적 연결망의 확대로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게 된 것일까?

    결론

      
    'UN 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62위로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으로 분류되고 있다.

    2007년에 조사된 자료에 따르면,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국가인 '부탄'이 행복지수가 1위로 집계된 적이 있다. 이에 따라 부탄의 사례를 제시하며, 소득 수준이 행복을 절대적으로 좌우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나 최근에 다시 조사한 자료에서는 부탄의 행복지수가 97위 밖으로 밀려나갔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인터넷의 발달'과 '민주주의의 확산'으로 통제된 사회 분위기가 자유로워지며, 부탄 국민들이 현실을 자각했다는 분석이 있다.

    행복해지기 위한 조건은 어떤 것이 있을까?
    나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제시하며 행복의 조건과 관련된 결론을 짓고자 한다.

    - 일요일보다 금요일이 행복하다. '불금'이라는 말은 있지만 '불일'이라는 말은 없다.
    - 무인도에서의 복권 당첨은 가치가 없어보인다. 행복에는 사회적 인정이 필요해보인다.
    - 형편이 넉넉치 않더라도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면 인내할 수 있다.

    이러한 가정들을 종합해본다면, 행복이라는 것은 '완전함'에 있다기보단 약간의 부족함에서 비롯된다고 생각된다. 어떤 것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완벽하고 완전한 행복도 시간이 지나면 금세 익숙해져서 평범한 일상이 되버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행복감을 느끼기 위한 역치는 점점 올라갈 것이며, 결국 대부분의 자극에 행복감을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행복은 결핍을 채우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된다.

    플라톤도 이와 유사한 생각을 한 것으로 보인다.
    플라톤이 주장한 행복의 다섯 가지 조건을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첫째. 먹고 입고 살고 싶은 수준에서 조금 부족한 듯한 재산을 가지면 행복하다.
    둘째.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 약간 부족한 정도의 용모를 지니면 행복하다.
    셋째. 사람들이 절반 정도밖에 알아주지 않는 명예가 있으면 행복하다.
    넷째. 남과 겨루어서 한 사람에게는 이기고 두 사람에게 질 정도의 체력이면 행복하다.
    다섯째. 청중이 나의 연설을 듣고도 절반은 손뼉을 치지 않는 말솜씨가 있으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