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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직업에 귀천이 있을까? - 블루 칼라와 화이트 칼라

 




    2022년도에 딜레마 토론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을 완벽하게 설득하는데 실패한 거의 유일한 주제가 '직업의 귀천'이었다. 윤리 교사로서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주장하고 싶었었지만, 설득력 있는 강력한 논거를 들지 못했다고 생각된다. 수업이 끝나고도 계속 고민을 해보았는데, 쉽게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내용인 것 같다. 그러다보니 블로그 글쓰기가 하나씩 밀리면서 결국 오랫동안 업로드를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사실 직업에 귀천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버리는 것은 학생들에게 교육적으로 좋지 않고, 너무나 잔인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고려한다면 합당한 근거 없이 모든 직업이 평등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에 따라, 그동안 준비해 온 다양한 참고 자료를 바탕으로 직업의 귀천에 대한 나의 결론을 조심스레 말해보고자 한다.


    직업을 상징하는 색


      
    흔히 노동 종사자들이 착용하는 유니폼의 색에 근거하여, '블루 칼라'와 '화이트 칼라'라는 직업군으로 구분한다. 블루 칼라(Blue-Collar)라는 용어는 1924년 미국 아이오와주의 '앨댄'이라는 지역신문에 난 구인 광고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당시 현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내구성이 강하고, 작업하다 묻을 수 있는 얼룩이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데님 소재의 옷을 입었다. 이에 따라 시간이 흐르면서, 생산직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자연스럽게 '블루 칼라'라고 지칭하게 되었다.
      
    화이트 칼라(White-Collar)는 땀이나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옷이 망가지지 않는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19세기만 하더라도 임금 노동자가 대부분이었으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새롭게 등장한 사무직 노동자가 등장하였다. 사무직 노동자는 육체를 사용하기보단 정신 노동에 종사하고 있고, 흔히 수입이나 학력, 사회적 지위가 우월하다는 인식이 있다.
      
    그 외에도 직업을 나타내는 색으로는 다음과 같다.

    - 정보화 사회에서 높은 생산성을 창출하는 골드 칼라(Gold-Collar) 노동자
    - 새롭게 등장한 과학 기술에 종사하는 그레이 칼라(Gray-Collar) 노동자
    - 고스펙을 지녔지만, 육체노동을 마다하지 않는 브라운 칼라(Brown-Collar) 노동자

    직업에 관한 사회적 인식



    우리는 어릴 때부터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여기는 것이 당연하다고 배워왔다. 실제로 교과서에서나 사회적 인식이나, 대놓고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이야기하면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의외로 개인적인 설문조사를 실시해본다면, 절반 이상의 사람이 직업에 귀천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설문조사를 진행해보았는데, 최소한 절반은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응답했다.
      
    '귀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신분이나 지위가 높다는 뜻이고, '천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지체나 지위가 낮다는 뜻을 지닌다. 과거 신분제 사회에는 분명히 귀하고 천한 일이 공식적으로 구분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분명하게 되어있지 않다.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로 운영되며, 개인이 보유한 자본에 따라서 사회적 계층이 나눠지고 있다. 즉, 상대적으로 편안한 환경에서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직종들이 일반적으로 귀하다고 여겨지고 있다. 위의 통계자료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직업의 귀천을 나누는 가장 큰 기준은 사회적 인식과 소득 수준, 업무 환경이었다.
      
    수업 시간에 "중국집 요리사와 파인다이닝 셰프를 비교하여, 유사한 두 직종 중에서 귀천이 구분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했다. 어느 반이든, 대부분의 학생들이 두 직종은 귀천이 구분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아마도 파인다이닝 셰프의 사회적 인식과 평균 임금이 높을 것이라 기대되어 그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여기에 사실 중국집 요리사는 전세계적인 프랜차이즈 대표 이사이며 취미로 요리사를 하고 있고, 파인다이닝 셰프는 매출이 좋지 않아 경영난을 겪고 있다는 조건을 추가로 제시해보았다. 그러자 많은 학생이 그런 경우라면 두 직종의 귀천을 나누기 어렵다는 의견을 보였다.


    세상에 필요하지 않은 직업은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많은 직업이 사라지고 있다. 앞으로도 인공지능, 로봇 등으로 인한 자동화로 인해 더욱 많은 직업이 대체될 것이다. 키오스크를 도입하여 주문을 따로 받는 음식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고, 마트에 자율계산대가 하나씩 들어오고 있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얼마든지 대체가 될 수 있는 직업은 상대적으로 귀천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직업과 계층




    통계적으로 파악한다면, 단순 서비스업이나 제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평균 연봉이 낮은 것으로 집계되었다. 그러나 반드시 '블루 칼라'라고 평균 임금이 낮은 것은 아니다. 특고압 케이블 작업공이나 비계공, 미장공, 플랜트 전공과 같이 남들이 쉽게 할 수 없는 기술을 지닌 사람들은 왠만한 '화이트 칼라'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

    특고압 케이블 작업공의 임금을 산술적으로 계산한다면, 한 달 20일 일하면 648만원을 벌 수 있는 고연봉 직종이다. 이들은 전력 공급을 위한 특별 고압 케이블을 설치하거나 노후화되면 보수하는 역할을 한다. 위험성이 높고 전문 기술을 요구하다보니 청년층이 유입되지 않아 업무 종사자들의 고령화가 심각하다. 이처럼 기술 숙련도에 따라 억대 연봉도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위험도와 업무 난이도에 따라 종사하는 사람이 적은 것이 인상적이다.
       
    배관공은 한국에서 평균 일급이 17만 6011원인데,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와 같은 서구 선진국에서는 더욱 높은 급여를 받는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2017년 기준 배관공의 평균 급여는 5만2590달러, 상위 10%는 9만1810달러(약 1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이러한 통계는 전문 기술을 지닌 일부 블루 칼라 계층에 한정되는 수치이다.

    우리나라의 직종별 임금 격차는 평균적으로 다음과 같다.


    한국 - 일본 - 유럽연합을 비교한다면, 우리나라의 업종 간 임금 격차가 가장 크다. 즉, 국가별 임금 수준 1위 업종의 임금을 100이라고 한다면, 상대적으로 임금이 가장 낮은 업종의 격차는 한국이 가장 컸다. 그러나 1인당 국내 총생산(GDP) 대비 전 산업 평균 임금수준은 한국 118.5%, 일본 107.0%, EU91.7% 순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한국 - 일본 - 유럽연합의 경제수준을 반영한 임금수준은 한국이 가장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대기업과 같은 상위 업종의 임금에 많이 몰려있다는 의미로,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도 매우 높은 수준인 것이다.

    직업의 귀천

      
    이전에는 직업을 낮추어 부르는 단어로 '딴따라', '깍새'와 같은 말들이 종종 사용되곤 했다. 그러나 어느새 딴따라는 '댄서', 깍새는 '헤어 디자이너'라는 세련되보이는 용어로 어느새 대체되었다.

    어떤 분야든지 그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면 전문성의 가치가 인정되어야 한다. 의사와 자동차 엔지니어를 비교하면, 많은 사람이 의사가 보다 귀한 직업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의사가 되기 위한 노력과 투자한 시간 등을 고려한다면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의사의 본분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듯이, 자동차 엔지니어 역시 고장난 자동차를 고치는 과정에서 자동차 사고를 미연에 방지함으로써 소중한 생명을 살릴 수도 있다.

    아무리 험하고 지저분한 노동이라도 필요하지 않는 노동은 없다. 오랜 시간 노동에 투자한 사람이라면 그 분야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직종이든간에 숙련된 전문가라면 더 많은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야 한다.


    위 만화의 의도는 파란색 옷을 입은 사람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란색 옷을 입은 사람의 생각도 바람직하지는 않아 보인다. 청소부를 암묵적으로 천한 직업이라고 인식하는 잘못된 편견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적 편견은 아래의 뉴스기사와 같은 안타까운 사례로 이어지고 있다.


    하나의 가치만을 우월하다고 판단하고, 그 가치를 얻기 위해 몰리는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다. 
    획일화된 사회는 다양성을 훼손하기 때문에 사회 전체적으로 봤을 때 결과적으로 손해이다. 우리나라의 인재가 의대에 몰리는 것은 '의료 서비스의 질적 확대'의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그러나 기초 과학, 기초 학문, 인문학과 철학 등이 부실하여, 세계적인 문호와 인문학자 및 과학자가 부족한 실정이다.
      
    결론 지어 말하자면, 보다 많은 사람에게 좋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일에 종사하는 곧 귀한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때의 직업은 특정 직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직군에 속하던, 그 직군이 긍정적인 영향력을 제공할 수 있다면 귀한 직업인 것이다.
      
    극단적으로 예를 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고의적으로 의료사고를 내고도 뻔뻔하게 의료계에 종사하는 의사는 귀하다고 말할 수 없다. 오랜 시간 자동차 정비에 몰두하여, 합리적인 가격으로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엔지니어는 귀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결론에 따른다면 모든 직업은 귀해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