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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1부와 2부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인간은 왜 추악한 짓을 하는가?'에 대한 자신의 철학적 주관을 지리하게 밝힌다. 이어진 2부는 1부의 내용을 증명하듯이, 자신이 겪었던 과거의 경험을 나열한다.

주인공은 자기자신을 파괴하면서까지 끝없이 추악한 짓을 한다. 정말로 찌질하고 추한 생각과 행동을 하지만, 밑바닥 심리의 심연까지 들여다보며 동정심이 들게 된다.

1부의 장광설은 조금 지루했으나, 본 내용이 진행되는 2부는 몰입도가 엄청나서 금세 읽었다.


"나는 병든 인간이다...... 나는 악한 인간이다. 나는 호감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다."

자신이 병자임을 고백하는 첫 문장부터 머리를 맞은 듯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40살의 글쓴이는 20년 동안 지하실에서 살면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그는 운 좋게 먼 친척으로부터 6천 루블을 물려받고는, 그대로 지하실에 정착한다. 젊을 때 잠깐 하급 관리로 일을 한 것이 모든 경력의 끝이고, 무척이나 열등감이 강한 성격이다. 조금이라도 자신을 무시당하면 발작하듯이 화를 내고, 어떻게든 복수할 것이라는 마음을 활활 지핀다.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일부러 어려운 책들을 읽어대고,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장광설을 늘여놓는다. 현란해보이는 일장연설을 하지만, 실은 자기 생각은 하나도 없고 그저 책 내용을 그대로 읊을 뿐이다. 화자는 누구도 이해하거나, 진실된 소통을 하지 못하고, 결국 자기 자신까지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첫 번째 이야기

  
주인공은 당구장에서 건장한 체격을 지닌 장교에게 어깨빵을 당한다. 그는 복수심에 불타며, 반드시 똑같은 어깨방으로 되갚아주겠다고 다짐한다. 형편이 넉넉지 않았지만, 무시당하기 싫어서 다니던 돈을 가불하면서까지 새로운 옷을 산다.

주인공은 장교의 생활 패턴과 주로 출몰하는 거리까지 면밀히 분석한다. 노골적으로 어깨를 부딪히기보단, 우연히 마주치듯이 하여 부딪히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서로의 어깨가 닿았다면, 피하지 않고 그대로 힘주어 부딪치겠다고 나름대로 철저한 계획을 짠다. 
하지만 자신이 짜놓은 계획대로 쉽게 흘러가지 않아서, 끝없는 자기혐오와 광기에 휩싸인다. 마침내 그는 은밀히 어깨빵에 성공하고, 소심한 복수를 감행했다며 뛸 듯이 기뻐한다.

두 번째 이야기

  
주인공은 학창시절을 혐오하며, 모든 인간 관계를 단절하며 지내고 있다. 하지만 잘나가는 동창에 대한 소식을 듣게되고, 억지로 동창들의 모임에 참석한다. 당연하게도 아무도 음침한 주인공을 반기지 않았고, 이에 갈가리 날뛰면서 열등감을 표현한다.

그는 없어보이기 싫어서, 직장 상사에게 돈을 빌리면서까지 술자리 모임에 참석한다. 그러나 상황은 전혀 나아지는 것이 없고, 철저하게 무시만 당하는 굴욕을 겪는다.

세 번째 이야기

  
주인공은 술자리 모임에서 행패를 부리다가, 홧김에 한 20살의 매춘부와 동침한다.
술에서 깬 뒤, 자신의 비참한 처지는 생각지도 않고 매춘부에게 일장 훈계를 늘여놓는다. 자신이 마치 구원자이자 철학자라도 된 마냥, 매춘부의 삶을 청산하라고 꾸짖듯이 지루한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그러다가 매춘부에게 묘한 열등감을 느끼고, 왠일인지 자신의 집 주소까지 알려줘버린다. 은근히 매춘부와의 로맨스를 꿈꾸며, 그녀가 언제 찾아올지 학수고대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자신을 찾아오지 않자 몹시 화가 치민다. 마침, 평소 자신을 무시하던 하인과 추한 모습을 보이면서 싸우는 일이 벌어졌다.

공교롭게도 그 순간 매춘부가 집에 찾아왔다.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자, 부끄러움을 느낌과 동시에 강한 분노감을 표현하며 발작한다. 자신이 감추고 싶었던 부분을 낱낱이 늘여놓으며, 처음으로 진실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혐오감을 표현하기는커녕 진심어린 사랑과 연민을 보인다. 주인공은 매춘부의 연민에 불쾌감을 표하고, 그녀와 관계를 가진 뒤 돈을 주면서 모욕한다.
 
그녀는 울면서 떠나지만,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것을 알리듯이 받은 돈을 방에 던져놓는다. 매춘부가 우는 모습을 보자, 갑자기 돌연 후회하면서 여자를 뒤따라가보지만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그는 그대로 지하실로 들어가, 내리 20년을 살게 됐다.


주인공은 그럴 듯하게 이야기하지만, 실은 그가 지껄이는 모든 말은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책에서 읽은 내용이다. 그는 스스로 병들어있다는 것을 잘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다고 합리화한다. 유일하게 스스로에게 솔직했던 순간은 좋아하던 매춘부에게 치부가 드러날 때라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나는 이 소설의 내용은 오늘날에도 통용된다고 생각한다.  
인터넷 상에서 범람하는 수많은 자료. 골방에 틀여박혀서 더 이상 진실된 소통을 하지 않는 사람들. 끝없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게시글들을 탐독하며, 스스로가 전문가가 된 듯이 착각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인터넷 상으로만 불만을 표시하고, 불편해하는, 누구보다도 좁은 식견을 갖춘 사람들이다. 이러한 인터넷 세상의 여러 인간 군상들을 보면, 도스토예프스키의 통찰력은 수백년을 앞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도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글을 통해 자유의지를 예찬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성과 합리성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도, 감정과 비합리성으로 스스로를 망치게끔 만드는 '자유의지'말이다. 다시 말해, 그는 인간의 불합리성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라고 주장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