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인 '장 지글러'는 스위스의 사회학자이다. 저명한 교수이자, UN 식량특별조사관으로도 활동한 장 지글러는 제3세계의 기아 실태를 온 몸으로 체험한 사람이다. 기아는 한 개인의 역량으로 오롯이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적극적인 저술 활동으로 전세계 사람들의 동참을 촉구한다.
이 책은 아들 '카림'과의 대화 형식으로 되어있어 읽기 편하고, 다양한 사례와 통계를 제시함으로써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정의에 대한 인간의 불굴의 의지 속에 존재한다. 파블로 네루다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그들은 모든 꽃들을 꺽어버릴 수는 있지만 결코 봄을 지배할 수는 없을 것이다.'"
TV나 인터넷 상에서 자주 보이는 공익광고는 제3세계의 굶주리는 아동들을 보여주며 기부에 동참하라고 손을 내민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수많은 식재료와 식당을 배경으로 한, 소위 '먹방'이라고 불리는 예능 프로그램도 자주 보인다.
아마 많은 사람이 국제 원조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감과는 별개로, 대부분 국제 원조를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여유가 없는 팍팍한 생계 활동과 내가 낸 기부금이 헛되이 쓰이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뉴스에서 종종 기부금을 횡령한 단체가 적발되는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기도 한다.
근본적으로 생각해보면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전세계 인구의 거의 절반이 굶주림을 겪고 있는 반면에, 넘치는 풍요로 비만과 각종 성인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면 부유한 나라들과 사람들이 조금씩만 식량을 배급해준다면 간단하게 굶주림이 해결되지 않을까? 이 책은 기아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수많은 사례들을 통해 생생하게 밝히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조사 결과, 1999년 한 해 동안 만성 영앙실조에 허덕이는 사람들은 무려 8억 2,800만명에 이른다. 규칙적으로 비타민 A만 복용해도 충분히 시력 손상을 막을 수 있지만, 매 년 700만 명이 영양실조로 실명하고 있다.
19세기 후반, 산업혁명으로 생산성이 눈부시게 향상되었지만, 사회구조의 모순으로 식량이 불공평하게 분배되고 있다. 일부 서구 부자나라의 사람들은 점점 높아지는 지구의 인구밀도를 기근이 적당히 조절하고 있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
1798년 '맬서스'라는 사람은 자신의 논문에서 늘어나는 인구를 조절하기 위한 '산아 제한 정책'을 주장했다. 맬서스의 주장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지만, 기아 문제를 외면하기 위해 아직도 많은 사람이 맬서스의 이론을 신봉하고 있다.
기아 문제는 단순하지가 않다. 군벌 간의 갈등, 내전, 불안한 사회 제도, 가뭄과 사막화, 사회 기반 시설의 미정비, 인도적 지원 거부 등의 복잡한 문제가 얽혀있다.
내부 사정으로 인해 경제적 기아의 실태는 뒤늦게 구호단체에 보고된다. 굶주림에 시달린 몸은 신진대사가 극도로 악화되어 있기 때문에 3~4주에 걸쳐서 회복시켜야 한다. 잘못된 진단과 약해진 몸에 맞지 않는 무분별한 영양공급을 방지하기 위해선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기아에 시달리는 가족들은 부자들이 버린 쓰레기 더미를 뒤져서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심각한 영양실조에 걸린 수백만의 엄마들이 매년 수백만의 건강하지 않은 아이들을 낳고 있다.
전세계에서 수확되는 옥수수의 1/4을 부유한 나라의 소들이 먹고 있다.
투기꾼들에 의해 국제적인 곡물거래 가격이 결정됨에 따라, 가난한 나라의 정부는 액수를 감당하기 어렵다. 부유한 나라들은 자국의 농민을 살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식량을 대량으로 폐기처분하거나, 생산을 제한한다.
식민지의 권력자들은 아프리카 농민들에게 유럽시장에서 소비될 수 있는 작물을 경작하도록 강요했다. 정부의 수출가격에 비해 농민들은 너무나 헐값으로 농산물을 넘기면서 고통을 겪고 있다. 수출용 작물에만 집중하다보니, 자급자족할 능력이 있음에도 해마다 식량의 해외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아프리카는 끊임없는 내전으로 도로가 끊김에 따라, 국제 원조물자의 운송과 배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심지어 난민캠프의 구호물품을 군부들이 관리하고 가로채면서, 군부들만을 배불리고 있다는 모순도 발생하고 있다.
아마존 일대의 거대한 플랜테이션으로 인해 마구잡이로 원시림이 파괴되고 있다. 농민들은 화전을 일구기 위해 숲에 불을 지르고, 국제기업들은 농장과 목장을 경영하기 위해 숲을 파괴한다. 이를 막기 위해 브라질 정부는 각종 새로운 법률을 공포하지만, 관리들의 부패로 인해 제대로 감시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기근을 극복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개혁을 시도하려는 나라도 있었다.
1970년, 칠레의 좌파 정치인 '아옌데'가 대통령 공약으로 '분유 무상 배급' 정책을 내세웠다. 그러나 분유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기업 '네슬레'가 미국 닉슨 대통령의 눈치를 보고, 제값을 치룬다는 정부의 요청도 거부했다. 결국 아옌데 정권은 재정적 어려움에 직면했고, 심지어 CIA는 피노체트의 쿠테타를 지원하며 아옌데를 살해했다.
부르키나파소 출신의 '토마스 상카라'는 자급자족할 수 있어도 근본적으로 사회정의가 이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상카라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국가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자주관리 정책'을 운영하며, 서서히 변화를 시도하였다. 또한 인두세를 폐지하고, 개간 가능한 토지를 국유화함으로써 농업 생산량이 크게 증가하여 국가 지출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상카라의 개혁은 부르키나파소의 구종주국인 프랑스가 달가워하지 않았다. 결국 상카라는 프랑스의 사주를 받은 자신의 동지에게 살해당하고, 다시금 만성적 기아상태로 돌아가게 되었다.
인류 역사상 최대의 경제력을 확보한 유럽연합은 자본 논리에 바탕한 자유시장 경제법칙을 과신하고 있다. 사회적 양극구도의 몰락과 기술혁신으로 인해, '금융자본'이 다른 모든 자본들을 제치고 주된 자본으로 부상하였다.
일부 개인들은 모든 아프리카 나라들의 국내 총생산(GDP)을 넘어선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시장원리주의 사상은 기아로 인한 생명 파괴를 초래하고 있다.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장 지글러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1. 인도적인 구호 조처를 효율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2. 당장의 원조보단, 희생자들을 역사의식을 지닌 주체로 만드는 개혁이 우선되어야 한다.
3. 자본, 도로, 종자, 비축식량, 전문지식 등 인프라를 정비해야 한다.
이것들이 실현되기 위해선, 가까운 이들에게만 연대감을 느껴선 안 된다.
모든 사람이 서로에 대해 책임을 다함으로써 진정한 평화를 도모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