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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피터 싱어의 『사회생물학과 윤리』

 

    과학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연구도 활발해지고 있다. 특히 인간 사고의 근간을 이루는 '뇌'를 연구하는 분야가 진보함에 따라 기존의 도덕 관념에 대한 도전이 진행되고 있다. 『사회생물학과 윤리』는 다윈의 진화론을 바탕으로 한 윌슨의 저서 『사회생물학』에 대한 비판적 수용을 다루고 있다.  
      
    본 저서는 1981년에 출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논쟁적이면서 많은 시사점을 담고 있다. 싱어 특유의 풍부한 예시와 명쾌하고 강렬한 주장으로 인해 어려울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금세 완독할 수 있었다.


    "사회생물학이 윤리에 시사하는 바는 간접적인 것이다. 즉 사회생물학은 윤리에 대한 직접적인 연구보다는 이타성 발달에 대한 탐구를 통해 간접적으로 윤리에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타성의 기원

      
    기존의 철학자들은 인간과 동물의 사회적 행동에 대해 참고할만한 것이 거의 없었다. 에드워드 윌슨은 다윈의 진화론 틀 내에서 모든 사회적 행동의 생물학적 토대에 대해 체계적인 연구를 진행하였고, 그 결과 이타성 발달에 대해 탐구함으로써 윤리에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었다.
      
    모든 동물은 수많은 세대를 거치면서 서서히 진화한다. 이타적 특징을 갖는 유전자는 이기적 특징을 갖는 유전자에게 패배하기 쉽다. 설령 이타적 특징을 갖는 유전자가 승리하더라도, 종 내에서의 경쟁은 계속된다. 사회생물학자들은 이타적 특성을 갖는 유전자는 '혈연 이타성'과 '호혜적 이타성'으로 자연선택을 설명한다.
      

    1) 혈연 이타성


    유전자는 다음 세대의 DNA 조각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무한정 살아남을 수 있다. 진화는 나의 자식의 생존과 번식을 증진시킬 수 있는 행위를 선호한다. 부모자식, 형제자매 뿐만 아니라, 혈연 및 친족과의 관계도 나와 밀접한 관계에 놓여있다. 유전적 토대를 갖는 혈연을 도우려는 경향이 곧 혈연 이타성의 기초를 이루는 것이다.
      

    2) 호혜적 이타성


    사람들은 자신을 도와준 사람과 도와주지 않은 사람을 기억할 수 있다. 호혜성이 나타나려면 어느 정도의 지능과 상대적으로 긴 수명, 소규모의 안정된 집단이 필요하다. 거짓말쟁이가 적어질수록 자신의 도움에 대해 더욱 빈번하게 보상을 받는 선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다.
      

    3) 집단 이타성


    소규모의 근친 집단에서 우연히 이타적 성향을 지닌 원숭이들이 발생했다. 그들은 서로 털 다듬기를 하면서 다른 집단보다 기생충을 쉽게 제거함으로써 생존가능성이 높아졌다. 성장압으로 인해 구성원의 일부가 다른 집단이 점유했던 영토로 이동하였다. 이들은 집단 이타성의 작동을 위해 이기적 성향을 지닌 다른 집단과 거리를 유지하고, 소수의 무임승차자를 처리할 방안을 개발하였다.

    윤리의 생물학적 토대

      
    인간은 가족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공동체 일반보다 가족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성향이다. 윤리는 자기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붙어있는 기생충을 서로 잡아주는 데서 시작하고 발전하게 되었다.

    시간과 노력의 낭비를 피하기 위해 나의 도움에 답례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분류해야 한다. 사고력과 의사소통능력이 증진되면서, 어떤 것이 공평한 교환인가에 대한 엄밀한 결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개인적인 분노가 집단 구성원들의 공감을 얻고, 일반 원칙 하에 놓이면, 도덕적인 분개로 전환될 수 있다. 모두의 피해를 피하기 위해 쟁점이 되는 증거를 경청하고, 모든 당사자들이 준수해야 할 공동체의 절차를 만들었다. 따라서 이타적 성향을 가지면서 자신들의 재능이나 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얻어내는 자들만이 진화에서 선택될 수 있었다. 이는 '문화'를 통해 개인적 이익을 지나치게 앞세우는 자들을 처벌하여, 집단 이타성으로 나아가도록 조장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진화에서 윤리로?


    사회생물학은 신경학적으로 인간의 두뇌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때, 유전적 소질에 부합되는 윤리 규율을 갖게 된다고 파악한다. 그러나 사회생물학이 우리의 행위에 대해 무엇인가를 일깨워주더라도, 그것이 윤리 영역을 위협하지는 않는다. 행동 결과에 대한 정보는 어떤 행동이 이미 우리가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기 때문이다. 즉, 새로운 정보를 통해 이전과는 다른 행동을 요구받을 수는 있지만, 기존 윤리 이론의 핵심에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
      
    생물학은 윤리적 신념 자체가 지지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신념의 정당화 방식이 잘못되었음을 보여준다. '자연주의적 오류'에 따르면, '사실' 그 자체만으로 행위를 하는 이유를 제공하지 않는다. 현명한 행위를 하기 위해선 사실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사실이 아무리 많이 쌓이더라도 그것만으로 결정할 수는 없다.
      
    윤리적 전제는 과학적 탐구를 통해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결정을 내리는 것은 유전자가 아니라, 바로 '나'이기 때문에 유전자에 대한 정보는 문제해결에 도움되지 않는다. 과학 이론이 아무리 잘 뒷받침되더라도, 자기 자신의 선택은 여전히 예측할 수 없다.
      
    윌슨은 윤리를 생물학적으로 감정의 표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고 간주한다. 그러나 윤리적 판단은 이성적 요소를 포함하기 때문에 윌슨의 가정은 잘못되었다.

    이성

      
    진화를 이루기 위한 생존 경쟁에서 추론과 계산 능력이 발달함으로써 생존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었다. 윤리는 서로 협조하며, 가급적 상해를 가하지 않으려는 유전자를 지닌 사회적 동물로부터 비롯되었다. 인간의 두뇌가 점차 커져감에 따라 이성적 사고 능력이 발전되었고, 이것이 호혜적 이타성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인간은 반성을 통해 사회적 실천을 규칙과 계율 체계로 변형시킬 수 있었다. 규칙과 계율은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공평무사성'을 요구한다. 이성적 사고는 특정 행동이 관습의 범위 안에 포함되는지 살피고, 이를 새로운 상황으로 확장시킨다.
      
    이성의 발전에 따라 인간은 '제 3자의 관점'을 지님으로써 자신이 속한 사회의 관습만이 옳다는 편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타인의 입장에서 상상해보고, 우리의 행동이 더 많은 선로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될 때 자신감 있는 판결을 내릴 수 있다.
      
    도덕적 결정은 타인이 수긍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따라서 도덕적 이상을 공정하게 평가해보고, 가장 큰 선호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므로 윤리적 의사결정의 유일한 토대는 '이익 평등 고려의 원리'가 되어야 한다.
      
    이성적 존재의 사고는 집단의 경계를 넘어서 자신을 확장해가는 자체의 논리를 지닌다. 보다 넓은 관점과 시각에서 본다면, 자신의 구성원의 이익이 다른 구성원의 유사한 이익보다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에 따르면, 우리의 행동으로 인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쾌락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모든 존재가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쾌고 감수 능력'을 갖추지 못한 존재는 선호를 갖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고려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이성과 유전자


    사회생물학자들이 정의하는 '이기적'이라는 단어는 '결과적으로 자신의 자손의 수를 최대화하는 방식'으로 행동할 때 사용된다. 이를 보다 엄밀하게 파악하면, '비이기적인 동기'와 '이기적 유전자'는 전적으로 양립가능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진화적 측면에서 섹스는 자손을 남기는데 있지만, 성장과정과 교육을 통해 이성적으로 피임을 선택하기도 한다. 또한, 헌혈자들은 특별한 대우나 보상도 받지 않지만 기꺼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혈액을 기증한다.
      
    '스스로 대접받고 싶은 방식대로 타인을 대우하라'는 생각은 상이한 전통 속에서 근원으로 간주되어 왔다. 이성이 윤리에서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동일한 공평무사한 윤리 원리에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항상 객관적 입장에 따라서 행위하는 것은 아니다. '혈연의 이익 증진 욕구'와 '이성적인 욕구'는 종종 상충되기 때문에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인간은 공동체에서 교육받고, 깊은 유대감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계획된 위선은 스스로의 삶을 불편하게 만든다. 윤리 체계는 집단적인 이성적 사고와 생물학적 개인으로서의 인간적 욕구 간의 긴장에 대처하기 위한 사회적 산물인 것이다.

    윤리에 대한 새로운 이해

      
    윤리에 이성적 요소를 포함해야만 도덕윤리에서의 '이성적 요소'와 '생물학적 요소'를 구분할 수 있다. 이성으로 객관적 견해를 갖는다는 것은 우리의 이익과 다른 사람의 이익을 동등하게 고려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행동을 유전자 탓으로 돌리는 것은 스스로의 행동을 통제할 수 없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합리적인 윤리 규율은 인간 본성의 성향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공평한 관찰자의 시점'만을 유일한 실천 기준으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공평한 합리성의 윤리'는 공평한 합리주의자들만 따를 수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좀처럼 따르기 쉽지 않다. 따라서 '생물학적 인간 본성에 부합되는 규칙'을 통해 전체 선을 증진하는데 자연스럽게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양부모 되기 운동'과 같은 방법을 통해 혈연 이타적 욕구를 보다 넓은 영역으로 확장시킬 수 있다. 이렇게 본성을 적절히 활용하기만 하면, 본성의 방향을 어느정도 바꿀 수 있게 된다.
      
    이성은 맹목적인 진화에 도전하면서, '공평무사한 관점'을 증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때로는 제재와 형벌 체계와 같은 '문화'를 통해 신중하게 윤리적 행위의 확산을 도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