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뇌 과학은 사랑을 호르몬 분비에 따른 일시적인 화학작용으로 간주한다. 즉, '사랑의 호르몬'이 계속 분비되다보면, 대뇌에 항체가 생성되어 더 이상 화학작용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파악한다. 이에 따르면 사랑의 유효기간은 18개월에서 3년 안에 대부분 끝난다.
그렇다면, 모든 사랑은 3년 만에 끝나는 뇌의 단순 화학작용에 불과한 것일까?
우리는 그저 뇌에서 분비되는 다양한 호르몬의 노예인 것일까?
3년이 지나버린 이성 간의 관계는 더 이상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걸까?
사랑과 관련된 다양한 연구를 살펴보며, 사랑의 의미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한다.
사랑의 호르몬
뇌 과학에 따르면, 사랑에 빠지면 뇌에서 '페닐에틸아민', '노르에피네프린', '엔돌핀', '도파민' 등과 같은 화학물질이 왕성히 분비된다. 보기만 해도 이름이 복잡해보이는 이 호르몬들은 마약과 같은 효과를 내면서, 사랑에 빠진 이들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안겨준다. 따라서 사랑에 빠진 이들은 연인을 생각하기만 해도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뛰며,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화학 물질은 뇌를 강렬하게 자극하여 면역계를 활성화함으로써, 더욱 건강하게 만들고 얼굴도 아름답게 가꿔준다.
과도한 호르몬 분비는 대뇌에 '관련 호르몬들에 대한 항체'가 생성되도록 한다. 대뇌에 생성된 항체들로 인해 시간이 흐를수록 사랑의 화학물질들의 분비가 점차 줄어들게 된다. 평균적으로 남자가 여자보다 사랑의 호르몬 수명이 더욱 짧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수록 호르몬 분비가 빠르게 줄어든다고 한다.
어느새 체내에서 익숙해진 호르몬들은 더 이상 뇌에 신선한 자극을 주지 못한다. 이에 따라 상대방에게 익숙해지고, 무덤덤해지면서, 심지어 사랑을 끝내는 경우도 발생한다. 하지만 사랑을 단순히 뇌 호르몬의 작용으로만 간주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다.
사랑은 이성 간의 열정적인 사랑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즉, 사랑은 친밀감과 이해, 존중, 책임감과 더불어 믿음과 헌신과 같은 다양한 감정들이 함께 어우러진 상태이다.
신시아 하잔(Cynthia Hazan) 교수의 연구
코넬 대학교의 '신시아 하잔' 교수는 미국인 5,000명을 대상으로 사랑의 감정을 열정적으로 느끼는 기간을 연구했다. 그녀에 따르면, '열정적인 감정'은 평균 18개월에서 30개월 정도 지속된다고 분석됐다. 또한 사랑에 빠진 뒤 1년이 지나면, 처음의 뜨거운 열정이 50% 이상 감소된다고 파악됐다.
사랑에 빠지면 우리 뇌의 가장 깊숙한 '미상핵'이라는 부분이 활성화된다고 한다. 미상핵은 '도파민'이라는 화학 물질을 분비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미상핵의 활동이 약해지게 된다. 미상핵의 활동이 약해짐에 따라, 이성적 사고를 담당하는 '대뇌피질'의 활동이 강해진다. 대뇌피질이 본격적으로 활동함으로써, 상대방에 대한 '콩깍지'가 벗겨지고, 상대방을 객관화하여 이해하게 된다.
도파민 분비의 감소에 따라 사랑의 열정은 줄어들 수 있지만, '애착'의 정도는 올라갈 수 있다. 애착은 어느 정도 쌓이면 더 이상 줄어들지 않고 계속 유지가 되는 또 다른 사랑의 감정이다. 따라서 연인들은 오랫동안 함께 할 수록 서로를 향한 설렘은 줄어들지만, 편안하고 안정된 느낌을 받게 된다. 즉, 애착으로 인해서 사랑의 호르몬이 더 이상 분비되지 않아도, 연인들은 계속해서 함께 사랑을 이어갈 수 있게 된다.
헬렌 피셔(Helen E. Fisher) 교수의 연구
헬렌 피셔 교수는 럿거스 대학의 인류학과 연구교수로 재직하며, '사랑'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했다. 그녀는 fMRI로 사람들의 뇌를 조사하고, 사랑이 인간의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분석했다.
연인들의 뇌 영상을 촬영한 결과, '강한 열망과 연관된 영역', '손익을 계산하는 영역', '애착과 관련된 영역'이 활성화됨을 관찰했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마약에 중독된 것처럼 고도의 집중력을 보이며,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자 한다. 또한 사랑은 강렬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어서, 헤어진 사람들은 사랑의 금단현상을 겪으며, 강렬한 실연의 아픔을 경험한다.
사랑은 마약 중독과 유사하지만,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다. 마약 중독자는 주로 한 가지 약물만 탐닉하지만, 사랑에 빠지는 사람은 단계별로 여러 가지 화학물질에 중독되기 때문이다.
헬렌 피셔 교수는 연구 끝에, 인간의 사랑이 세 가지 단계를 거친다는 것을 발견했다.
1) 갈망(Lust) - 성 호르몬에 의해 성적 욕구가 발생하는 단계
2) 홀림(Attraction) - 중추신경이 자극되어 행복감에 도취되지만, 3년 뒤 내성이 발생하는 단계
3) 애착(Attachment) - 진통 성분인 엔드로핀과 옥시토신이 분비되어, 서로에게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끼는 단계
결론
뇌 과학자들은 열정적인 사랑의 유효기간이 900일이라는 점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남녀가 사랑하고, 아기를 가지고 출산한 뒤, 아이가 부모의 도움 없이 스스로 생존하려면, 900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사랑의 유효기간'은 종족 번식과 관련된 일종의 생존 본능과 같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모든 사랑을 본능이나 뇌의 호르몬 기능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우리는 본능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지 않을 수 있는 '이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열정적인 사랑이 끝났더라도 그 사람에 대한 마음이 식었거나 변한 것은 아니다. 다양한 연구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랑은 애착을 통해 열정을 넘어서 연인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안정감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