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뇌 뉴런만 1,000억개에 달한다고 하니, 현재 기술로는 인간의 모든 세포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언젠가 모든 인간 세포와 유전자 구조가 밝혀진다면, 이를 디지털 컴퓨터 안에 업로드하여 '디지털 인간'을 창조할 수도 있지 않을까?
공상과학에만 나오는 내용같지만, 실제로 어떤 생명체를 이용하여 디지털 생명체를 만드는 시도가 있다. 이 생명체의 이름은 '예쁜꼬마선충'이며, 생명 과학 분야에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생물이다.
예쁜꼬마선충의 신경세포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통해 '생명체의 기준'에 대해 고민해보자.
예쁜꼬마선충(Caenorhabditis Elegans)
예쁜꼬마선충은 투명한 몸을 가지고 있고, 길이가 1mm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작은 생물이다. 썩은 식물에서 흙 속의 미생물들을 먹고 자라며, 다 자라는데 3일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아서 배양하기에 용이하다. 실험실에서는 일반적으로 대장균을 먹이면서 키우며, 유지비가 적게 들고, 얼려서 보관할 수 있기 때문에 장기 보관이 가능하다.
예쁜꼬마선충의 체세포 개수가 약 1,000개 정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유전자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연구 끝에 모든 유전자의 서열이 밝혀졌으며, 다세포 생물 중에 최초로 DNA 서열이 완전히 밝혀진 생물이라고 한다. 이 생물을 대상으로 '세포 자살 연구', '질병' 등 다양한 분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이목을 끄는 연구가 있다.
생명체의 기준
과학자들은 예쁜꼬마선충의 모든 뉴런 정보가 밝혀진 것을 바탕으로, 이들의 행동 패턴을 그대로 디지털화하여 관찰했다. 예쁜꼬마선충의 뉴런들의 연결 정보와 강도를 그대로 컴퓨터에 옮겨서 관찰해본 결과, 실제 예쁜꼬마선충의 행동패턴과 유사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아직은 예쁜꼬마선충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재현하지는 못하고 있다. 단순한 생명체로서 모든 뉴런 정보가 밝혀졌더라도, 예쁜꼬마선충의 시냅스의 연결 강도가 언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정확히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는 예쁜꼬마선충의 움직임을 단순히 모방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으며, 부족한 부분은 '머신 러닝'으로 보충하고 있는 실정이다.
추후 기술이 더욱 발전하여 예쁜꼬마선충뿐만 아니라, 인간마저도 완벽하게 디지털화하여 재현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리고 디지털에서 존재하는 가상 생명체의 의식을 로봇에 이식한다면, 이를 생명체라고 간주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정의되는 '생명체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 탄수화물, 지질, 핵산, 단백질과 같은 성분을 지닌다. - 살아가기 위해 에너지와 물질을 필요로 한다. -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 항상성을 유지한다. - 종은 진화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디지털 정보를 바탕으로 기계몸에 의식을 이식한 존재는 생명체라고 분류되기엔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만약 인공 생명 기술이 대중화됨에 따라, 기계몸에 의식을 이식한 사람들이 많아지면 생명체의 기준을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사고실험으로 알아본 '통 속의 뇌'를 정말로 실현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