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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황금가지 사에서는 '아이작 아시모프가 50년간 집필한 필생의 역작'이라고 소개하지만, 실은 아이작 아시모프는 1951년에 첫 작품을 발표한 뒤로 한참 뒤에야 다시 시리즈를 이어나가며 완결시켰다. 그 때문인지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총 7권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작품의 집필 및 진행 순서에 따라 1~3권을 1부, 4~5권을 2부, 6~7권을 3부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실제로도 주요 내용이 부에 따라 다르게 전개되고, 느낌도 상당히 다른 편이다.)


    "가알은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되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알아내려고 애썼다. 그러다 여태까지 수없이 사진으로 보아 온 얼굴임을 가알이 깨닫는 순간, 상대편이 입을 열었다. '내가 해리 셀던일세.'"

    미래의 인류는 '트랜터'라는 은하제국의 수도에서 황제의 통치를 받고 있다. 민주주의 체제는 잘 알지 못하는 듯하며, 인류의 기원 행성인 '지구'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도 극히 일부이다. 각 행성은 나름대로 자치권을 발휘하곤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황제의 명령에 반드시 따라야 하는 상황이다.(물론 이러한 정치 체제에 불만을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의 세력을 구축하려는 행성도 등장한다.)

    '해리 셀던'이라는 수학자는 자신이 고안한 '심리 역사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은하제국이 머지않아 멸망할 것을 예측한다. 너무나 거대한 제국이다보니, 금방 붕괴되지는 않겠지만 시나브로 다가오는 멸망의 조짐은 피할 수 없음을 직감한다.

    은하제국의 멸망이 피할 수 없는 사실이라면, 멸망 이후의 우주적 혼돈을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따라서 해리 셀던은 인류가 겪을 암흑기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심리 역사학을 바탕으로 새로운 은하제국의 토대가 될 수 있는 '파운데이션'을 은하의 반대편 끝에 설립하고자 한다.


    1부


    1부(1권 ~ 3권)는 해리 셀던이 '터미너스'라는 행성에 설립한 '파운데이션'이 점차 강해지는 모습을 다룬다. 일반적인 소설의 구조와는 조금 다르게, 시간 흐름을 갑작스럽게 빠르게 전개하는 연대기적 흐름을 보인다. 이를테면, 파운데이션에 어떤 위기가 도래하면 이를 빠르게 눈치 챈 일부의 사람들이 기회를 노려 위기를 극복하고 더욱 강해진 세력을 구축하는 식이다. 그리고 다음 장에서는 수십년을 건너뛰며, 파운데이션이 겪는 또 다른 위기를 다룬다.

    사실 파운데이션이 겪는 위기는 해리 셀던이 심리 역사학에 의해 예정해놓은 것들이며, 변증법의 과정을 거치듯이 파운데이션은 위기를 통해 성장하게 된다. 파운데이션은 수십년 뒤에도 예정된 위기를 극복하면서 기술적 면에서 범접할 수 없는 거대한 세력이 된다. 이런 식으로 파운데이션이 순조롭게 위기를 극복하는 것 같더니, 해리 셀던의 심리 역사학이 예측하지 못한 사건이 발생한다.
      
    심리 역사학은 무적의 예언서가 아니다. 심리 역사학도 나름대로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심리 역사학은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심리 역사학의 내용을 알고 있으면 효과가 없으며, 개별 인간의 심리는 예측하지 못한다. 즉, 심리 역사학의 대상은 수학적이고 통계적으로 분석가능한 크기의 집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돌발적인 외부 변수에 취약하다.  
      
    갑작스레 등장한 외부 변수에 의해 심리 역사학이 전례없는 위기를 겪게 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파운데이션의 구성원들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 1부의 주요 내용이다.


    2부


    2부(4권 ~ 5권)는 '골란 트레비스'라는 파운데이션의 의원이 파운데이션의 배후에 숨어있다고 판단되는 '제2파운데이션'을 찾아나서는 내용이다. 기술 문명이 발달된 '제1파운데이션'과는 달리, 정신 문명만 발달시킨 '제2파운데이션'은 파운데이션이 스스로 위기를 극복하기 어려워보이면 후방에서 지원을 하면서 암암리에 영향력을 펼치고 있다.
     
    '골란 트레비스'는 장차 파운데이션이 제 2의 은하제국이 되더라도, 제2파운데이션을 없애지 않으면 그들의 꼭두각시가 된다고 판단하고 제2파운데이션의 근거지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제2파운데이션은 해리 셀던의 직접적인 후계자들로, 고유의 정신 능력을 가진 '발언자'로 이루어져 있다. 발언자들은 사람의 감정을 조종할 수도 있고, 작은 사건들도 조작할 수 있어서 일종의 나비효과를 이루어내며 해리 셀던의 심리 역사학이 순항을 이룰 수 있도록 한다.  
      
    주인공이 여럿인 1부와는 다르게, 2부에서는 골란 트레비스가 주인공이다. 골란 트레비스는 여러 행성을 떠돌다가 마침내 인류의 기원이라고 불리는 '지구'를 찾게 된다. 그리고 그는 '달'에서 충격적인 진실에 직면하게 되고, 인류의 미래와 관련된 거대한 선택을 하게 된다.  


    3부


    3부(6권 ~ 7권)는 젊은 '해리 셀던'이 심리 역사학을 개발하는 내용이다. 심리 역사학은 처음부터 완전한 미래예측을 할 수 있는 이론이 아니였으며, 해리 셀던이 온 인생을 다 바쳐가며 말년이 되어서야 겨우 아이디어가 정립된 것이었다.
      
    3부에서 해리 셀던이 겪는 수많은 어려움들은 인간적인 연민을 자아내게 한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마지막 3부를 집필하며, 자신의 모습을 해리 셀던에게 투영한 것처럼 보인다. 노인이 겪는 고독과 쓸쓸함. 사라지고 잊혀져 가는 것들에 대한 슬픔. 죽음이라는 공허함. 그렇지만 이 모든 외로움에도 끝까지 주어진 사명을 다하려는 인간의 실존. 이 모든 감정이 매 문장마다 절절하게 느껴져서, 마지막 3부를 가장 감명깊게 읽었다.

    아이작 아이모프의 훌륭한 필력과 예측할 수 없는 내용 전개, 뜻밖의 반전 등 여러 가지 요소로 끝까지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은하제국의 거대한 이야기를 완성했지만, 정작 가까운 이들에게는 소홀히 했던 후회와 성찰이 느껴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우주적 규모에서의 한 인간의 초라한 삶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걸까?  
    심리 역사학으로 영원히 기억되는 해리 셀던과 파운데이션으로 영원히 기억되는 아이작 아시모프.  
    누군가에게 잊혀지지 않고 영원히 기억될 수 있다면, 덧없는 인생은 아니였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