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과 IT의 중요성이 나날이 더해가는 시대이지만, 그에 비례하여 인문학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철학을 공부해보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서양철학사'나 '동양철학사'라는 책들은 너무나 두껍고 지루하기만 하다. 『소피의 세계』는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권할 수 있는 철학책이다.
"너와 나도 대폭발로 존재하기 시작했어. 우주의 모든 물질은 유기적인 통일체이기 때문이야. 태초의 어느 순간에 모든 물질은 한 덩어리로 뭉쳐있었어. 그리고 그건 질량이 엄청났지. 아주 작은 크기지만 무게가 수십억 톤이나 됐어. 이 '최초의 물질'이 엄청난 중력 때문에 폭발했고 모두 산산조각 났지. 우리가 하늘을 쳐다보는 건 우리 자신에게로 가는 길을 찾는 거란다."
시중에 나와있는 수많은 철학서적들은 연대기적인 서술방식과 지나치게 방대한 분량으로 읽기도 전에 지칠 수 있다. 그러나 『소피의 세계』는 연대기적인 구성을 취하고는 있지만, 독특한 서술방식으로 인해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전체적인 구성은 플라톤의 대화편들을 오마주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소피와 크녹스의 대화로만 이루어졌다면, 다른 철학사 책과 큰 차이점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등장인물들이 과감하게 '제4의 벽'을 허물고, '소설 속 소설'이라는 액자식 구성을 취함으로써 긴장감과 호기심을 유발한다.
아이러니한 점은, 힐데와 크나그 또한 소설 속 등장인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메타 픽션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우리 또한 누군가의 소설 속 등장인물이 아닐까?'라는 비판적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우리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철학의 근원적 질문은 자아와 우주로 향한다.
고대의 철학자들은 과학과 철학을 구분하지 않았다. 그들은 지식을 탐구하는데 충분한 과학적 지식이 필요하다고 간주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의 지식은 너무나 복잡하여, 모든 면에서 전문가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철학의 근원적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고대 철학자들이 그러하듯이 과학적 지식과 함께 할 필요가 있다.
『소피의 세계』는 빅뱅과 우주의 근원, 그리고 인간의 실존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무한한 우주의 흐름 속에서 인간의 초라함을 조망하거나, 범신론적 관점으로 흘러가지 않고, 인간의 실존적 의미를 분명하게 밝히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우리 딸이 잠들기 전 머리맡에서 동화처럼 읽어주고 싶은 따뜻한 책이다.
줄거리
'소피'라는 열 다섯살 소녀에게 누군가 갑자기 철학적 질문이 담긴 편지를 보내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알베르토 크녹스'라는 철학 선생님이었고, 소피가 철학 수업을 들으면서 내용이 진행된다. 열 다섯살이 할 법한 질문과 적절한 예시를 통해 이해하기 어려운 철학적 담론들이 쉽게 풀어져있다. 성인들을 위한 동화답게 어렵지 않게 내용을 받아들일 수 있고, 다루는 내용의 깊이도 꽤 있는 편이다.
소피와 크녹스의 철학 수업으로 내용이 통상적으로 흘러가는 듯이 보이다가, 갑자기 추리/미스터리물의 성격을 보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힐데'라는 소녀와 알 수 없는 흉계를 꾸미는 '알베르트 크나그'가 등장하면서 긴장감이 발생한다.
사실 소피와 크녹스는 '책 속의 세계'에 살고 있던 등장인물이었다. 현실 세계는 힐데가 살고 있는 곳이며, 딸 힐데의 열 다섯살 생일을 위해 크나그 소령이 지은 책이 바로 『소피의 세계』였던 것이다.
크녹스 선생님은 이를 일찍이 눈치채고, 작가(알베르트 크나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쓴다. 스스로의 실존적 본질을 깨달을 수 있다면 책 속의 세계를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소피와 철학 수업을 지속해나간다.
철학 수업은 고대 그리스부터 실존주의와 다윈, 프로이트를 거쳐 현대 과학으로까지 향한다. 마침내 그들은 『소피의 세계』라는 허구의 세계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하고, 현실 세계의 힐데와 만나면서 내용이 마무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