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세기의 미남으로 유명한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이 안락사를 결정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그는 뇌졸증으로 오랜 시간 투병 생활을 하며, 건강이 더욱 악화되면 안락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재산을 처분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이 되어서야 제한적으로 환자의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존엄사'를 합법화했다. 존엄사가 허용되는 질병은 말기 암, 에이즈, 만성 간경화 및 폐 질환 등 정말 어떠한 조치도 취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만 비로소 가능하다.
안락사는 크게 '소극적 안락사'와 '적극적 안락사'로 구분된다. 소극적 안락사는 죽음에 이르는 사람을 소생시키기 위한 적극적 조치를 하지 않고 그냥 방치하는 것이다. 적극적 안락사는 '의사에 의한 조력 자살'이라고도 일컫으며, 작위적인 방법으로 생명을 단축시키는 것이다.
적극적 안락사는 인간 존엄성, 종교적인 이유, 법률적 이유 등으로 극히 일부 나라들만 허용되고 있다. 네덜란드는 2002년에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했으며, 약 4%의 국민들이 안락사로 생명을 마감하고 있다. 스위스는 환자의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며, 외국인에게까지도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다.
기술 발전에 의해서 안락사의 방법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2017년 공개되어,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될 예정인 사르코 캡슐(Sarco Capsule)을 통해 존엄사에 대해 생각해보자.
필립 니스케(Philip Nitschke)
호주의 필립 니스케 박사는 무려 22년 동안 안락사 분야만을 연구했다.
그는 '질소 중독 사고'에 착안하여, 사르코 캡슐(Sarco Capsule)을 만들었다.
질소는 무취, 무색, 무미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과다 흡입해도 느끼기 어렵다. 질소는 공기 중에 78%를 차지할 정도로 흔한 물질이지만, 밀폐된 공간에서 과다 흡입할 경우 문제가 생긴다. 즉, 질소를 과다 흡입할 경우, 아주 약한 몽롱함을 느끼고 의식을 잃은 뒤 고통없이 사망하게 된다.
사르코는 3D 프린터로 만들 수 있으며, 필립 니스케의 개인 홈페이지에 설계도를 무료로 공개하여 이슈가 되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생명이 소중한 선물이라면, 때론 선물을 버리는 선택도 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주장하며, 종교 단체와 인권 단체로부터 극심한 비판을 받고 있다.
사르코 캡슐(Sarco Capsule)
사르코 캡슐을 사용하기 위해선, 우선 온라인으로 정신 감정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
아래의 조건들을 충족하면 누구든지 사르코 캡슐에 들어갈 수 있다.
1) 만 25세 이상인가?
2) 대출 이력이 없거나, 대출을 모두 상환했는가?
3) 재판이나 법적 처벌이 모두 종료되었는가?
4) 본인의 장례비용, 시설 이용료, 전문가 입회비 등 총 300만원의 비용을 국가에 지급했는가?
위의 조건을 충족한 사람은 사르코 캡슐 안에 들어가, 스스로 버튼을 눌러서 안락사를 진행한다.
버튼을 누르고서도 약 5분 간의 유예기간을 두어서,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버튼을 누르면 금세 내부가 질소로 가득 찬다. 사르코 캡슐은 30초 만에 산소 농도를 21%에서 1%로 급격히 떨어뜨리며, 저산소증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다.
사르코 캡슐은 친환경적으로 설계되어 미생물에 의한 분해가 가능하다. 따라서 사르코 캡슐을 그대로 화장하거나 매장해도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한다.
"출생은 나의 선택이 아니지만, 죽음은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에 사르코 기계가 도입되는 것은 아직 이르다고 생각된다. 우리나라는 전세계에서 유래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고령 인구가 증가하고 있으며, 그에 비례하여 노인 빈곤율 및 빈곤 위험도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력 자살이 인정되어 사르코 기계가 도입된다면, 과연 노인들은 온전히 자발적 의사만으로 스스로의 생을 마감할 수 있을까?
부양 가족의 눈치, 사회적 시선, 경제적 압박감 등 다양한 이유로 노인들은 반강제적으로 사르코에 탑승하여 고통뿐인 삶을 마감할 것이다. 조력 자살은 ‘존엄한 죽음’을 전제로 한다. 삶의 끝으로 내몰린 노인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하게 되는 편안한 죽음이 과연 안식을 줄 수 있을까?
초고령화 사회의 조력 자살은 '망자의 안식'이라기보단, 살아남은 가족들의 안도감과 세대 간의 갈등만이 더욱 커질 것이므로 아직은 우리나라에 도입되기엔 시기상조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