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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턴테이블 입문] 아날로그의 세계 - 스트리밍의 문제점과 LP의 매력

 


    사라져가고 있던 턴테이블 문화가 새롭게 유행하고 있다.

    잠깐의 불씨인지 뜨거운 불길이 될 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소수의 매니아들만 향유하던 문화가 어느새 힙스터들에게 다시금 주목받는 취미가 되고 있다.

    턴테이블과 LP는 다루기가 상당히 까다로운 장비로서,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선 꽤나 공부를 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새롭게 입문하려는 사람에겐 상당히 진입장벽이 있어서,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방황하다가 흥미를 잃어버리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겪었던 여러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앞으로 턴테이블 및 LP 문화에 입문할 사람들을 위해 지금까지 공부한 내용을 최대한 쉽고 친절하게 작성해보고자 한다.


    뉴트로(NewRetro) 열풍



    LP 판매량이 CD를 추월했다는 통계 자료가 제시됐다. 이는 1987년 이후 처음이며, 앞으로도 이러한 추세가 지속될 전망이다. 2022년 미국 기준으로, LP 매출은 약 12억 달러인데 CD 매출은 4억 8300만 달러에 그쳤다고 한다. 물론 여전히 음악 수익의 대부분은 스트리밍 서비스이지만(스트리밍 서비스의 매출은 무려 102억 달러로 LP와 CD 매출과는 비교가 안 된다.), 아주 오래된 음향 장비인 LP와 턴테이블이 다시 유행하는 현상은 매우 인상적이다.

    LP는 아날로그 저장 매체로서, 디지털 저장 매체인 CD가 1982년에 처음 등장한 이후로 지속적으로 판매량이 감소했다. 그러나 최근 옛 문화를 새로이 즐기는 것이 힙한 것으로 보이는 유행,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직접 소장한다는 '굿즈'의 개념 등의 '뉴트로(NewRetro)' 열풍으로  LP와 턴테이블이 다시금 부상하고 있다. 아무래도 스트리밍 서비스가 지배하는 음악 시장에서 굳이 음악을 소장한다면, CD를 소장하는 것보단 큼지막한 LP를 소장하는 것이 훨씬 더 소장가치가 있을테니 말이다.

    본인도 작년부터 LP와 턴테이블 문화에 본격적으로 입문하여, 지금도 재미있게 즐기고 있다.
    1년 동안 LP를 수집하고 관련 장비를 구매하며, 상당한 시행착오와 온갖 실패를 거듭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실패를 충분히 감수할 만큼 LP 문화는 매력적이기 때문에 보다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져서 지금보다 LP 시장이 커졌으면 좋겠다. LP 시장이 커지면 그만큼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어 좋아하는 음악들을 보다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이니깐. 아무튼 LP 문화에 관심 있거나, 입문하려는 사람을 대상으로 나와 같은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최대한 상세히 포스팅해보았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아날로그는 사전적으로 '외부적인 원인에 의해 연속적으로 변하는 물리량으로 나타내는 일'이라고 정의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자연에서 물질적으로 얻게 되는 모든 정보, 자료, 신호 등을 아날로그라고 한다. 이러한 아날로그를 활용하여 어떤 매체에 담아둔 것을 '아날로그 매체'라고 한다. 0과 1이라는 이진법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디지털'은 1990년대부터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하며 빠르게 아날로그 세계를 집어삼켰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발달로 인해 디지털은 일상의 거의 모든 아날로그 매체를 대체하기에 이르렀다.

    디지털은 우리의 삶과 더욱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단순 계산을 넘어, 우리의 삶을 분석하고, 제안하고, 확장하며, 마침내 지배하고 있다. 물질에 기반을 둔 아날로그는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다. 아날로그 매체를 오래 사용할수록 점점 손상이 가해지고, 추가적으로 보완하거나 구입하는 등 유지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그러나 디지털은 물질이 아니라 '비트'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무한히 복제해도 추가적인 원료나 비용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와 같은 디지털 매체의 특성으로 인해 기존의 산업사회의 틀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으며, 경제 법칙도 새로이 작용하게 되었다.

    음악 산업도 디지털과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되었다. LP로 대표되는 아날로그 산업은 점차 사장되고 있다. 인터넷의 발달로 디지털 매체인 CD를 넘어, 네트워크를 통해 실시간으로 디지털 정보를 받아오는 '스트리밍' 산업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스트리밍은 특유의 편의성과 방대한 자료, 그리고 접근성으로 압도적인 지위를 지닐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스트리밍 서비스는 AI와 접목하여 사용자의 음악 취향을 분석한 뒤 새로운 노래를 추천해주고, 많이 듣는 노래를 순위 매겨 목록화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비교적 저렴한 이용료만 제공한다면 별도의 추가 비용 없이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대부분의 노래를 언제 어디서나 쉽게 들을 수 있게 됐다.

    스트리밍 서비스의 문제점



    스트리밍 서비스의 문제점은 그것이 가져오는 편리성에 기인한다.

    사람들은 더 이상 음악 감상을 진심으로 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음악은 언제 어디서나 쉽게 들을 수 있는 만큼 부담없이 향유하기 시작했다. 가수의 앨범이 나오면 모든 노래를 돌려보는 것이 아니라 타이틀곡만 골라서 듣거나, 음원 차트에 순위가 높은 유명한 노래만 섭렵한다. 음원 차트는 팬들 간의 경쟁을 부추기고, 사재기와 같은 잘못된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일단 차트에 오르기만 한다면 그 이유만으로 유명해지는 악순환이 이루어진다.

    오래 들어야 비로소 진가가 나오는 노래도 분명 있지만, 스트리밍 시대의 성공적인 음악은 대부분 첫 간주 10초 내에 성패가 결정된다. 조금이라도 긴 노래는 참을성 없이 금세 넘겨버리고, 틱톡와 쇼츠의 유행으로 전체 노래 길이가 점차 짧아지기 시작했다. 짧아진 노래는 특정 부분만 반복하여 중독성만을 유발하는 영양가 없는 노래로 변질되었다.

    이제 음악은 감상이 아니라 철저한 소비의 영역이 된 것이다.

    LP의 불편함



    LP는 스트리밍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아니다. LP는 상당히 불편한 매체이다.

    LP의 지름은 12인치(30cm)에 무게는 110~180g이 나간다. 한 장 한 장은 체감이 잘 안되더라도 많이 쌓여있으면 은근히가 아니고 대놓고 무거워진다. 더군다나 12인치 크기의 물리 매체를 보관할 장소도 마땅치 않은데, 잘못 보관하면 LP가 망가져서 음악 감상에 심각한 지장이 올 수 있다.

    음악을 감상할 때도 불편한 부분은 한 두개가 아니다.

    많은 사람이 LP가 가장 음질이 좋을 것이라고 오해한다. 사실,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무손실 음원'을 감상하는 것이 가장 음질이 좋다. 조금만 판에 손상이 생긴다면 잡음이 생기고, 어지간한 고급 장비가 갖춰지는 것이 아니라면 음질면에서도 상당히 손해를 보게 된다. 더군다나 CD는 한 번 재생하면 처음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자동으로 재생이 되는데, LP는 어느 정도 감상하면 판을 뒤집어서 다시 재생해야 한다. 심지어 트랙 이동도 자유롭게 안되고, 한 번 재생하면 반드시 끝까지 들어야만 한다. 또한 턴테이블 작동 방식이 수동이라면, 음악 감상이 끝난 다음에 다시 바늘을 올려주기까지 해야 한다.

    LP의 매력



    아이러니하게도, 위에 언급한 불편함이 곧 LP의 매력이 된다.

    LP의 사이즈가 크다는 것은 앨범커버가 크다는 것으로, 음악을 틀어놓고 커버 디자인을 천천히 감상하면 독특한 재미가 있다. 심지어 예쁜 앨범커버는 인테리어 소품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선 인디 밴드 'ADOY'의 앨범커버가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밴드 ADOY는 Aokizy라는 예명을 사용하는 '옥승철' 디자이너의 그림을 사용하고 있다. 옥승철의 그림을 구하는 것보다, ADOY의 앨범을 구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더 쉽기 때문에 턴테이블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LP를 구입하기도 한다.

    ADOY의 『LOVE』  

    LP 재생 중에는 트랙 이동을 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이런 특성으로 인해 '음악 감상' 그 자체에 집중하도록 만들어준다. 억지로 트랙을 넘기지 못하기 때문에 앨범을 전체적으로 감상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앨범을 듣다보면 남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명곡도 귀에 들어오고, 앨범의 구성과 유기적인 면모를 느끼는 등 새로운 방법으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심지어 과거 LP 시대의 아티스트들은 LP 한 면을 다 듣고 다음 면으로 넘기는 그 순간까지도 계산하여 영리하게 트랙을 배치한다.

    LP 음원에선 종종 탁탁 튀는 장작 소리가 나거나 미묘한 잡음이 섞여 들린다. 일반적인 상황에선 이러한 것들이 불쾌한 소음이 되지만 기묘하게도 LP에 한정해서는 고유의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준다. 즉, LP가 원형 그대로의 완전히 깔끔한 음악을 재생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아날로그 매체 특유의 분위기를 바탕으로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기름진 사운드를 들려준다. 이것은 정말 감성의 영역이기 때문에 뭐가 더 좋다 나쁘다라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LP만이 들려주는 이 특이한 음향에 매력을 느끼고, 오늘도 턴테이블에 판을 올리고 음악을 감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