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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턴테이블 입문] LP의 역사 - Long Play, LP 제작과정



    사라져가고 있던 턴테이블 문화가 새롭게 유행하고 있다.

    잠깐의 불씨인지 뜨거운 불길이 될 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소수의 매니아들만 향유하던 문화가 어느새 힙스터들에게 다시금 주목받는 취미가 되고 있다.

    턴테이블과 LP는 다루기가 상당히 까다로운 장비로서,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선 꽤나 공부를 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새롭게 입문하려는 사람에겐 상당히 진입장벽이 있어서,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방황하다가 흥미를 잃어버리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겪었던 여러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앞으로 턴테이블 및 LP 문화에 입문할 사람들을 위해 지금까지 공부한 내용을 최대한 쉽고 친절하게 작성해보고자 한다.


    LP의 역사


    Standard Play(SP)


    LP(Long Play) 이전에 존재하던 아날로그 매체는 SP(Standard Play)가 있었다.

    토마스 에디슨은 최초로 소리를 녹음하는 아날로그 매체 '포노그래프(Phonograph, 축음기)'를 만들었다. 포노그래프는 오늘날의 턴테이블과 다소 다른 모습이긴 하지만, 턴테이블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1887년 '에밀 베를리너'는 소리를 담아내는 아날로그 매체인 SP(Standard Play)와 이를 재생하는 '그라모폰(Grammophon)'을 발명했다.

    Grammophon

    그라모폰은 작은 원형 테이블에 SP를 올려놓고 SP를 회전시킨 뒤, 바늘로 SP의 표면을 긁어서 소리를 재생하는 시스템이다. 즉, 오늘날의 턴테이블과 거의 유사한 특성을 지닌다. SP는 매체의 특성상 한 면에 3~4분 밖에 녹음이 되지 않았는데, 이것이 이름 그대로 '표준 재생(Standard Play)'이 되어 대부분의 노래가 3~4분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SP에서 사용되는 쉘락이라는 소재의 내구성이 약하여 너무 쉽게 파손이 되었고, 한 면당 노래를 한 개밖에 넣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태생적인 한계가 있었다. 이와 같은 특성으로 오페라와 같이 긴 음악을 담기 위해선 수 장에서 수십 장의 SP가 필요했다. 이 때 여러 장의 SP를 두꺼운 앨범 케이스에 보관하는 것에서 유래하여, 음악 레코드나 디스크를 '앨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1948년, 콜롬비아 레코드에서 LP(Long Play)를 개발했다. LP는 회전속도를 줄이면서 한 면당 15~20분 정도의 노래를 수록할 수 있게 되었다.(나중엔 기술 발전이 되면서 최대 30분까지도 노래를 담아냈다.) 심지어 당시에 신소재로 각광받고 있던 플라스틱(염화비닐 합성수지, PVC)을 주요 소재로 사용하여, SP에 비해 내구성면에서도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LP의 양면을 모두 합치면 4~50분 정도의 노래를 담을 수 있는데, 이렇게 LP에 노래를 꽉꽉 채워담기 시작할 때부터 오늘날의 '앨범'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한 앨범이 보통 4~50분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추후 앨범은 여러 실험적인 아티스트들에 의해 여러 노래를 단순히 담아내는 것을 넘어,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유기적으로 트랙을 배치하는 '컨셉 앨범'의 형태로 발전했다.

    12인치인 LP는 33 1/3 RPM 혹은 45RPM으로 재생할 수 있는데, 콜롬비아 레코드사의 경쟁사인 RCA 빅터는 7인치 레코드판 한 면에 2~3곡을 담을 수 있는 45RPM의 EP(Extenteded Play)를 개발했다. EP는 크기의 문제로 LP에 비해 많은 노래를 담을 수 없기 때문에 RCA 빅터는 새로운 판매 전략을 고안했다. LP에 수록된 모든 노래는 너무 길어서 부담스럽고, 한두곡만 듣기에는 아쉬운 사람들을 위해 타이틀곡과 같은 일부 노래들만 EP에 수록한 뒤,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했다. 바로 여기에서 오늘날 EP 앨범을 일종의 미니 앨범이라고 간주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레코드판은 크기에 따라서 크게 7인치, 10인치, 12인치로 구분된다. 당연하겠지만 크기가 큰 레코드판이 더 많은 노래를 담을 수 있다. 레코드판의 모든 사이즈를 통칭하여 Vinyl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비닐이라고 하면 흔히 마트에서 주는 검정색 비닐 봉다리를 생각하기 때문에 Vinyl을 '바이닐'이라고 부르게 됐다. 다시 말해 레코드판, LP, 바이닐은 모두 같은 대상을 지칭하는 말이다.

    LP의 재도약



    영원할 것만 같았던 LP의 시대도 CD(Compact Disc)가 등장하게 되면서 점차 저물게 되었다.

    필립스와 소니가 공동으로 개발하여 1982년에 상용화된 CD는 바이닐과 비교하여 훨씬 작고 가볍지만, 6~70분의 음악을 담을 수 있기 때문에 작은 디스크라는 뜻 그대로 'Compact Disk'라고 이름 짓게 되었다. CD는 알루미늄 판에 레이저로 홈을 파서 0과 1의 이진법 데이터를 저장하는 디지털 방식으로 정보를 기록한다. 제작과 보급의 간편함, 작은 크기로 인한 보관과 관리의 용이성 등으로 CD는 빠르게 LP를 대체했다. 심지어 음악뿐만 아니라 약 700메가까지의 데이터도 저장할 수 있게 되어서 CD의 시대가 새로이 도래하게 되었다.

    2010년 이후,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USB 메모리와 SD카드가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CD는 LP에 비해 짧은 전성기를 뒤로 한 채 서서히 퇴장하고 있다. USB와 SD카드는 훨씬 더 많은 용량을 담을 수 있을 뿐더러, 휴대성과 편의성에서도 압도적인 이점을 보이기 때문에 금세 CD의 기능을 대체할 수 있었다. 심지어 스마트 기기의 대중화로 인해 촉발된 '스트리밍 시장'은 이제 음악을 더 이상 별도로 구매해서 들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음악 매니아들은 단순히 듣는 것을 넘어, 아티스트와 보다 가까워지기 위해 음악을 소장하길 원했다. 소장으로서의 음악은 CD보단 크기가 시원시원하여 보는 맛이 있는 LP가 힙해보였을 것이다. 애초에 편리함만을 중시했다면 간편하게 스트리밍 서비스만 누리면 될 테니.

    코로나 시대를 맞아 집에 머무르게 된 사람은 새로운 취미활동을 찾게 되었다. 특히 신세대들은 그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과거의 문화를 체험해보고 싶어했다. 그들은 필름 카메라, 복고 패션, 헤드셋, 고전 영화와 드라마 등을 향유하며, 과거의 문화를 현대의 감성에 맞게 재해석했고, 이런 과정 속에서 과거의 문화는 새로운 생명력을 얻을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침체된 LP시장은 다시 한 번 날개를 달게 됨으로써 제 2의 전성기가 올 수 있었다.

    LP라는 한정판



    LP를 제작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동영상 참고)

    (1)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음악을 '래커 디스크'로 옮긴다. 래커 디스크로부터 바이닐을 찍어내기 때문에 주의하여 제작해야 한다. 우선 래커 디스크에 음압을 물리적으로 새기는 홈인 소리골(Groove)을 만들어야 한다. 소리골을 만드는 작업을 '커팅(Cutting)'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소리골을 턴테이블의 바늘이 읽어냄으로써 음악이 재생되는 원리이다. 소리골이 새겨진 다음, 이물질이 들어갔는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확인한다. 이후 음성 신호가 담긴 래커 디스크에 금속도금처리를 하여 전기가 통하도록 만든다.

    Groove

    (2) 래커 디스크에서 본격적으로 바이닐을 생산할 수 있도록 '스탬퍼'를 만든다. 스탬퍼는 바이닐과 반대모양의 양각으로 되어있으며, 한 개의 스탬퍼로 대략 3~500개의 바이닐을 생산할 수 있다. 바이닐을 생산하는 기계 위에 양각 스탬퍼를 부착하고, 잘 반죽된 PVC 원료를 아래에 깔아준 뒤, 프레싱 기계로 압착하여 레코드판을 만든다. 이러한 과정으로 인해 바이닐을 생산하는 과정을 '프레싱(Pressing)'이라고 한다.

    Pressing

    (3) 완성된 레코드들은 일일이 눈으로 확인하면서 손상 여부를 검사한다. 이처럼 바이닐의 모든 생산과정은 여전히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다보니 커팅과 프레싱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에 따라서 소리가 천차만별로 들릴 수 있다. 이 때문에 특정 년도, 특정 공장, 특정 회사에서 생산된 제품이 다른 제품보다 음질면에서 아주 뛰어난 모습을 보일 수 있으므로 이러한 제품들이 고가에 거래되기도 한다.(실제로 동일한 오디오 환경에서 다른 프레싱 판들을 비교해서 들어보니, 확연한 차이가 느껴졌다.)


    (4) PVC를 가공할 때 색을 적절하게 배합하면, 바이닐에 다양한 색을 입힐 수도 있다. 컬러 디스크는 음질면에서 조금 손해를 본다곤 하지만, 전문가가 아니라 그런지 아무리 들어봐도 내 귀로는 잘 모르겠다. 이렇게 생산된 컬러 디스크는 아주 예쁘기 때문에 한정판이라는 명분으로 비싸게 거래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컬러 디스크를 선호하지 않는다. 우선 먼지가 잘 보이지 않아서 관리하기가 귀찮고, LP라는 매체가 애초에 수작업으로 생산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한정판 아닌 한정판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컬러 디스크로 인한 한정판 마케팅은 제작사의 상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구매하지 않는다.


    뉴트로 열풍에 이어 LP가 새로운 유행이 되자, 수많은 업체에서 우후죽순으로 바이닐을 생산하고 있다. 문제는 그간 노하우가 있던 많은 공장이 문을 닫았고, 일부 공장들은 많이 팔리니까 이참에 많이 빨리 찍자는 식으로 커팅과 프레싱 과정을 섬세히 다루지 않고 막무가내로 생산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CD에 맞춰져서 믹싱이 된 음원을 억지로 LP에 구겨넣듯이 소리골을 새겨넣고 프레싱하여, CD보다 음질이 훨씬 좋지 못한 LP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바이닐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온통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고, 제작과 생산이 모두 가능한 LP 공장이 그리 많지 않다보니 공급 또한 넉넉치 않다. 그러한 이유로 바이닐은 중고 시장이 활성화되어있고, 거래와 판매 역시 해당 커뮤니티 내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만약 우수한 커팅과 프레싱 과정을 거친 바이닐이 잘 관리가 되었다면, 오히려 초창기의 가격보다 중고거래에서 훨씬 더 비싼 값을 매길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바이닐을 제테크의 수단으로 삼는 사람도 일부 존재한다.

    바이닐은 해외의 명반일수록 구하기가 쉽고, 국내의 인디 앨범일수록 구하기가 어렵다. 해외의 명반은 전세계적으로 수요가 많기 때문에 계속해서 여러 공장에서 찍어내지만, 국내의 인디 앨범은 수요를 쉽게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아무래도 인디 앨범들은 우리나라를 대상으로만 판매하므로, 많이 팔릴 것이라고 기대하여 왕창 찍어냈다가 판매가 부진하면 악성 재고로 남을 것이다.) 심지어 Adele도 코로나 시국에 새 앨범을 CD와 LP로 제작하여 동시 발매를 했는데, 생각보다 호응이 좋지 않아 결국 덤핑 처리하여 염가로 판매했다.(다른 예약 대기 중인 LP를 강제로 밀어내고 찍어낸 것이라 욕을 많이 먹었다.)


    대부분의 국내 바이닐은 소량만 생산하기에 발매 시기를 놓치면 상당히 구하기가 어렵고, 비싼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추가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이익을 얻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엉뚱한 리셀러들이 이익을 보는 것은 여러모로 좋은 현상이 아니다. 때 늦은 바이닐 유행으로 인해 LP 가격이 폭등한 우리나라 아티스트로는 잔나비, 백예린, 아이유 등이 있다. 이들의 바이닐 앨범 발매일은 콘서트 티켓팅을 방불케 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판매 사이트의 서버가 다운되는 것은 기본이고, 대부분의 제품이 5분 내로 품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