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 상태
바이닐은 대부분의 과정을 여전히 수작업으로 생산하기 때문에 공급량에 한계가 있다. 이와 같은 특성으로 인해 중고 바이닐을 구매하고 판매하는 시장이 활성화되있다. 오프라인으로 바이닐을 본다면 직접 육안으로 상태를 확인할 수 있겠지만, 모든 바이닐을 직접 발로 뛰며 구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대부분 온라인으로 구하게 된다.
중고거래의 특성상 사용감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바이닐은 무척 손상에 취약하기 때문에 상태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판매자는 바이닐 자켓과 알판(음반) 상태를 표기하는데, 보통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제시한다.
- Mint: 미개봉이거나, 미개봉에 준한 상태. 최초 포장을 제거하지 않았으며, 새 제품에 가까운 깔끔한 외형을 보인다.
- Near Mint(NM): 최초 포장이 제거됐고 약간의 사용 흔적이 있으나, 손상이 거의 없어서 새 제품과 큰 차이가 없는 상태. 제품에 따라서 실기스가 있기도 하지만, 재생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에도 NM상태로 표기한다.(이와 같은 경우는 보통 NM-라고 한다.)
- Excellent(EX): 접힘, 긁힘, 닳음, 변색, 벌어짐 등 어느정도의 손상이 있지만 대체로 양호한 상태. 자켓과 알판의 사용감은 분명하게 느껴지지만, 음악 감상에는 큰 지장이 없는 경우에 해당된다.(여기부터는 상태가 천차만별로, EX+, EX, EX-으로 표기한다.) EX 등급의 바이닐을 구매할 때는 판매자에게 자켓과 알판의 상태를 알 수 있는 세부 사진을 요청하는 것이 좋다.
- Very Good(VG): 자켓과 알판의 손상이 육안으로 분명하게 보이고, 세월의 흔적이 많이 느껴지는 상태. 바이닐을 재생할 때도 간헐적인 잡음이 발생하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구매를 권장하지 않는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해외 구매를 할 때, 독일과 일본 국적의 셀러들이 판매하는 제품이 상당히 관리 상태가 좋았다. 특히 일본 셀러들의 관리가 뛰어난데, EX+라고 표기되어있던 제품도 거의 NM에 가까운 퀄리티를 보여줬다. 아무래도 섬 나라의 특성상 높은 습도로부터 바이닐을 지키려면 보관을 잘 해야 할 것이다. 일본 사람 특유의 깔끔한 성격으로 인해 대부분의 거래가 아주 만족도가 높았다.
유럽 셀러들의 제품도 크게 나쁘지 않았지만, 모든 거래 과정이 느릿느릿 이루어져 다소 답답함이 느껴졌다. 페이팔로 돈을 입금했음에도 불구하고 배송은 1주일 뒤에야 시켜주거나, 셀러에게 문의글을 넣으면 2~3일 간격으로 드문드문 답장하는 등 한국사람으로서 몹시 참기 어려웠다.
평균적으로 가장 불만족스러운 거래는 미국 셀러들이었다. 보관을 창고에다가 그냥 쌓아놓는지 상태도 좋지 않았고, 표기보다 나쁜 상태를 지니기도 했다. 이와 같은 사례는 매우 주관적이니 디스콕스와 같은 해외거래 플랫폼을 사용한다면, 해당 셀러의 전체 평점과 거래 횟수 등을 모두 고려하여 종합적으로 잘 판단하길 바란다.
LP 잡는 방법
위와 같은 방법으로 바이닐을 잡으면 손의 기름기와 지문이 소리골에 묻어서, 재생할 때 잡음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바이닐은 알판에 최대한 손이 닿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만져야 한다.(아래 사진 참고)
새 제품이나 게이트폴더 형식의 자켓이 빡빡해서 알판을 빼내기 어려울 수 있다. 이와 같은 경우에는 무리해서 손으로 어떻게든 꺼내보려고 시도하기보단, 안경닦이나 극세사 천을 사용해서 꺼내는게 간편하다. 그 외에도 아래와 같이 LP 전용 그립을 구매해서 편하게 꺼낼 수도 있다.(바이닐을 자켓에 많이 넣고 빼다보면 나름대로의 요령이 생겨서 저런 도구가 없어도 잘 할 수 있지만, 있으면 확실히 관리하기가 편하긴 하다.) 꺼낸 다음에는 레코드판의 상태를 전반적으로 살펴보고, 먼지를 최대한 털어낸 다음에 턴테이블에 올리면 된다.
LP 관리 방법
1) 먼지 제거하기
바이닐은 염화비닐 합성수지(PVC)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정전기가 많이 발생한다. 정전기는 정전기장 유도 현상으로 인해 주변의 먼지를 끌어당기는 특성이 있다. 그러다보니 바이닐은 자켓에서 빼고 넣는 단순한 과정만으로도 먼지가 쉽게 붙어버린다. 먼지는 소리골에 박혀서 음질을 저하시키고, 재생할 때 장작불 타는 소리(탁탁거리는 소리)가 나도록 만든다.
아무리 조심스럽게 바이닐을 만지고, 최대한 알판을 손에 안 닿게 하더라도 PVC 원료의 특성으로 인해 무조건 먼지가 붙을 수 밖에 없다. 즉, 바이닐을 잘 관리한다는 것은 먼지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것과 같다.
먼저 레코드판을 턴테이블에 올려놓기 전에 주변의 먼지를 제거해야한다. 부드러운 붓으로 턴테이블 위에 있는 먼지들을 살살 털어주고, 바이닐의 전체적인 상태를 확인한다. 알판에 먼지가 묻어있다면, 판에 톤암을 올리지 않은 채로 플래터를 회전시킨 뒤 브러쉬로 쓸어내준다. 만약 브러쉬가 없다면 안경닦이나 극세사 천으로 먼지를 털어내도 괜찮다.
2) 물 세척하기
손기름이나 지문을 깨끗하게 지우기 위해선 세척을 해야한다. 물론 초음파 세척이 레코드판을 가장 깨끗한 상태로 만들어주지만, 전문 장비가 필요하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 심각하게 상태가 나쁜 것이 아니라면, 가정집에서는 물 세척만으로도 충분히 깨끗하게 관리할 수 있다. 구체적인 세척 방법은 다음과 같다.
- LP를 충분히 담글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의 대야를 준비한다.
- 대야에 물을 적당히 채우고, 중성세제를 몇 방울 섞어준다.
- LP 라벨에 '라벨 보호기'를 장착하여, 라벨이 젖지 않도록 한다.
- 대야에 LP를 10분에서 30분 정도 충분히 담궈서 먼지와 때를 불려준다.
- 흐르는 물에 부드러운 솔을 사용하여, 소리골 방향대로 거품을 살살 제거한다.
- 극세사 천으로 물기를 닦아주고, 햇볕이 들지 않는 곳에서 충분히 건조시킨다.
소리골은 물리적으로 새겨진 것이므로, 물 세척 과정에서 강한 압력만 가해지지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물 세척을 하면 대부분의 경우에 소리가 상당히 좋아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물에 섞는 중성세제는 퐁퐁이나 폴리덴트 같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주방용품을 사용하면 된다.
물 세척 과정에서 라벨 보호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레코드판의 종이 라벨이 물에 젖어서 영구적인 손상이 갈 수 있다. 레코드판의 소리골을 닦아줄 때는 '아기 모공 세안 브러쉬'를 추천한다. 아기가 사용하는만큼 솔이 상당히 부드러워서 알판의 손상을 최대한 방지해준다.(따로 구매하기가 부담스러우면 칫솔을 사용해도 괜찮다.)
모든 과정이 완료되었으면, 레코드판이 휘지 않도록 햇볕을 피해서 조심스럽게 건조시킨다. 이 때 다이소에서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접시 건조대'가 있으면 좋다.
물 세척은 효과가 확실하지만 시간과 노력 및 정성이 많이 필요하고, 준비해야 할 도구도 한두개가 아니다. 가장 필수적인 도구만 하더라도 대야, 라벨 보호기, 브러쉬, 건조대라니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다. 물론 자동으로 세척을 해주는 초음파 기계도 있다. 레코드판을 안에 넣으면 정수된 물과 전용 세척액을 사용하여 자동으로 솔로 세척하고, 진공 장치로 건조도 시켜준다. 세척과 건조가 빨리 이루어져서 상당히 편리해지지만 문제는 가격이 꽤 비싸다.
물 세척 이외에도 목공풀을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곤 하는데, 잘못 세척했다가 오히려 더 망가질 것 같아서 한 번도 시도해보진 않았다. 사실 관리 상태가 좋지 않거나 지나치게 오래된 바이닐이 아니라면, 물 세척을 그렇게까지 꼼꼼하게 할 필요는 없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스트레스를 받고, 완벽한 세척에 집착하는 것이 오히려 음악 감상에 방해가 된다. 완전하고 깨끗한 음질로 구김 없이 음악 감상이 가능한 것은 스트리밍 서비스이므로, LP를 감상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감성의 영역임을 명심해야 한다.
3) 스프레이 세척제
물 세척이 귀찮다면 스프레이 형태의 세척액을 사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알판에 칙칙 뿌려주고, 극세사 천으로 부드럽게 닦아주면 간단하게 세척이 끝난다. 세척액의 주성분은 알코올과 증류수로, 제품마다 성분이 유사하기 때문에 반드시 비싼 것을 살 필요가 없다. 주기적으로 소모품을 계속 구매해야하는 것이 흠이지만, 가장 간편하면서도 효과도 확실하기에 개인적으로 애용하는 방법이다.
4) 속비닐 씌우기
바이닐을 구매하면, 보통 위와 같은 하얀색의 종이 속지(Inner Sleeve)가 알판을 보호하고 있다. 처음에 제공되는 종이 속지를 그대로 보관하는 사람도 많지만 추천하지는 않는다. 종이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종이 가루, 오래된 종이의 부스러짐 등으로 인해 먼지에 민감한 바이닐이 종이의 먼지를 빨아들인다. 또한 종이가 주변 습기를 흡수함으로써 바이닐에 곰팡이가 필 수도 있다. 따라서 이너 슬리브에 특별한 디자인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처음의 종이 속지는 버리고 비닐로 속지를 바꿔주는 것이 좋다.(바이닐의 속지가 하얀색 종이가 아니라 디자인이 되어 있는 이너 슬리브라면, 알판을 비닐에 넣은 채로 이너 슬리브에 보관한다.)
물론 비닐 속지도 쉽게 구겨진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종이 속지보단 여러모로 바이닐의 손상을 최소화한다. 가격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가장 좋은 제품은 겉은 종이지만 속은 비닐로 된 이너 슬리브이다. 하지만 가격이 비싸고, 비닐로 된 속지로도 바이닐을 충분히 잘 관리할 수 있다. 모든 것을 최고급으로 사려고 하다보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수 있으니, 적당한 가격대의 비닐로 된 이너 슬리브를 살 것을 추천한다.
5) 겉비닐 씌우기
바이닐을 잘 보관하기 위해선 속비닐뿐만 아니라, 겉비닐도 필요하다. 겉비닐이 없다면 외부 충격에 의해 쉽게 커버가 손상되고, 링웨어(Ringwear) 현상이 발생한다. 링웨어는 앨범 커버에 바이닐이 들어있을 때, 판이 있는 부분과 없는 부분 사이의 두께 차이로 인해 알판 모양으로 서서히 프린팅이 벗겨지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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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ngwear |
링웨어는 보기에도 안 좋고, 나중에 중고로 판매할 때도 상품성이 떨어진다. 특히 우리나라의 여름은 매우 습한데, 여름철의 습도를 머금은 앨범 커버가 끈적끈적해져서 다른 바이닐의 커버에 짝짝 달라붙을 수 있다. 서로 달라붙은 바이닐을 떼어내보려다가 커버가 찢어지고 손상이 가해질 수 있다. 이와 같은 커버 손상과 링웨어를 예방하기 위해 미리 겉비닐을 씌워놓는 것이 좋다. 요즘은 대부분의 바이닐이 소장가치를 높인다고 두꺼운 '게이트폴더'형으로 나오고, 종종 2LP, 3LP로 출시되기도 하기 때문에 크기가 여유 있는 겉비닐을 살 것을 추천한다.
6) 겉비닐과 속비닐의 방향
바이닐을 관리할 때 겉비닐과 속비닐을 어떤 방향으로 씌워야 할 지 고민될 수 있는데, 크게 위와 같이 A와 B 방법으로 구분할 수 있다. A는 속비닐을 → 방향으로 겉비닐을 ↑ 방향으로 한 것이고, B는 속비닐과 겉비닐을 모두 → 방향으로 한 것이다. B는 통풍이 되고 알판을 빨리 뺄 수 있지만, 먼지가 쉽게 들어갈 수 있고 잘못하면 알판이 미끄러져서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는 위험이 있다. 그에 비해 A 방법은 겉비닐과 속비닐 방향을 엇갈리게 배치해서, 뺄 때는 조금 귀찮더라도 알판이 바닥에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 링웨어 현상은 앨범 커버에서 레코드판이 있는 부분과 없는 부분 사이의 두께 차이로 인해서 발생한다. 그래서 링웨어를 근본적으로 방지하기 위해 속비닐에 들어있는 알판을 커버 안에 넣지 않고, 자켓 맨 뒤에 따로 놓은 뒤 그 위에 그대로 겉비닐을 씌워서 보관하기도 한다.
링웨어 방지에는 이 방법이 제일 확실하다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앨범 커버의 뒷면이 안 보이는 관계로 멋이 안나서 그냥 A 방법으로 보관하고 있다. 만약 턴테이블이 없어서 바이닐을 미개봉으로 보관하더라도, 되도록이면 겉비닐을 씌우는 것을 추천한다. 포장된 비닐이 생각보다 금방 삭아버릴 수 있고, 미개봉 상태로 오래 보관하면 링웨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7) 수직으로 세워놓기
바이닐은 반드시 수직으로 세워서 보관해야된다. 플라스틱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강도와 내구성은 있지만, 잘못된 방식으로 오랫동안 보관하면 판이 영구적으로 휘어질 수 있다. 바이닐이 몇 장 되지 않는다면 눕혀서 보관해도 되지만, 수십 장이 된다면 아래 쪽에 있는 판이 압박을 받아서 손상될 수 있다. 전문 업체에 맡기면 휘어진 판도 어느 정도는 복원할 수 있지만 비용도 많이 들고, 경우에 따라 제대로 재생이 안 될 수도 있다.
8) 열과 습기 조심하기
바이닐은 열과 습기에도 민감하다. 플라스틱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열기를 받으면 판이 녹아버릴 수 있다. 심지어 습도가 제대로 유지되지 않는다면 소리골 사이사이에 곰팡이가 피게 된다. 게다가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바이닐을 보관하면 커버가 변색된다. 그러므로 바이닐은 그늘지고 건조하며 적당한 온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적절한 장소에서 보관해야 한다.
특히 우리가 조심해야 할 부분은 보일러이다. 만약 바닥 장판 위에 설치한 LP 보관함이 열을 잘 받는 소재라면, 겨울에 보일러를 강하게 틀 때 그대로 열을 받게 된다. 달궈진 LP 보관함은 소중한 판을 우글우글 변형시킬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이처럼 바이닐은 제대로 관리하기가 참 까다로운 제품이다. 관리만 잘하면 자식에게도 물려줄 수 있다지만 쉽지는 않다. 그래도 방 한 구석에서 바이닐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모습을 보면 흐뭇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