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생활과 윤리' 교과의 높은 선택율로 인해 윤리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윤리? 그거 그냥 착하게 행동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어떤 면에선 분명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하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착하다'의 의미가 분명치 않다. '착한 행동'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으며, 후대에 다르게 평가될 수도 있고, 똑같은 행동이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착함'의 의미를 분명히 하는 것이 윤리 교과의 의미이자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루이 14세'와 관련된 일화와 '이데올로기'의 개념을 소개하며, 윤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루이 14세
'태양왕'이 별명이었던 17세기의 프랑스의 위대한 군주, 루이 14세. 그의 초상화에서 그의 압도적인 권력을 짐작할 수 있다. 위풍당당한 자태. 모든 귀족이 동경하는 절대군주. 남자 중의 남자, 상남자. 그런데 자세히 보면 위의 초상화는 조금 이상하다.
초상화의 루이 14세는 가발을 쓰고 스타킹을 입고 있으며, 심지어 하이힐까지 신고 있다. 오늘날 기준으로는 조금 이상한 모습이지만, 실은 이러한 속사정이 있다.
루이 14세는 어릴 때 겪은 말라리아의 후유증으로 30대 중반부터 탈모가 왔다. 그는 탈모를 감추기 위해 가발 장인을 48명이나 두고, 매 번 가발을 돌려가며 사용했다. 이에 귀족들도 탈모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루이 14세의 가발 착용을 따라하게 되면서, 프랑스 궁전에는 온통 가발을 쓴 귀족들이 보였다.
이후 귀족들에겐 가발을 쓰는 문화가 확산되었고, 가발을 점점 사치스럽게 꾸미며 귀족들의 권위를 상징하는 도구가 되었다. 심지어 흰색 가발이 '지성'을 상징한다고 간주하고, 밀가루를 사용하여 가발을 흰색으로 칠하기도 했다. 이 때 귀족들은 가발에 밀가루를 뿌리기 위한 방을 따로 만들었는데 바로 여기에서 '파우더 룸'이 유래하였으며, 오늘날의 여성들이 화장하는 방을 상징하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당대 프랑스 사회는 극심한 굶주림으로 식량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귀족들은 이런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빵을 만드는 원료인 밀가루로 가발을 칠할 정도였으니, 이는 평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게 되었다. 평민들의 극심한 분노로 인해 결국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게 되었고, 평민들은 흰색 가발뿐만 아니라 가발을 쓰고 다니는 모든 귀족에게 보복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혁명 이후, 가발은 탈모를 감추기 위한 원래의 목적으로만 착용하게 되었다.
오늘날 여성들이 다양한 목적으로 착용하는 스타킹은 본래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당대의 기사들은 강철 갑옷을 착용하고 전투에 임하다보면 온 몸이 긁히기 일수였다. 따라서 기사들은 패션 아이템이 아니라, 쇠에 피부가 긁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피부 보호의 목적으로 스타킹을 착용하게 되었다.
과거의 스타킹은 탄력이 좋지 않아서 자주 흘러내렸다. 처음에는 스타킹을 묶는 방식으로 해결했지만, 이런 방식이 다리의 혈액순환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 철학자 칸트는 스타킹을 고정시켜주는 '가터벨트'를 고안했다. 이후 귀족들은 처음에는 흰색 스타킹만 신다가, 점점 자신의 위세를 표현하기 위해 화려한 디자인으로 치장하게 되었다.
하이힐도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하이힐은 말을 탈 때 발걸이에 발을 잘 걸치게 하는 것이 본래 목적이었으나, 이후엔 귀족들이 자신의 권위를 높이려고 키가 커보이도록 하기 위해 착용하게 됐다.(참고로 루이 14세는 키가 163cm이었는데, 무려 10cm가 넘는 하이힐을 신고 다녔다고 한다.)
한 때, 가발과 스타킹, 하이힐은 신분을 나타내는 귀족 남성들의 패션 아이템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발은 탈모 환자들만 착용하고 있고, 스타킹과 하이힐은 여성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오늘날 평범한 남성이 스타킹과 하이힐을 신은 채로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많은 사람이 이상하게 바라볼 것이다.
지금은 스타킹과 하이힐이 당연히 여성들의 의복 문화라고 생각하지만, 과거에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이와 같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그 시대를 이루는 지배적인 생각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서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이데올로기(Ideologie)
이데올로기는 이데아(Idea)와 로직(Logik)의 합성어로서, 어떤 관념(Idea)들을 유사한 방식으로 묶어서 하나의 관념 체계로 규정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는 이념(理念)이나 관념(關念)으로 해석되는데, 마음 속에 떠오르는 생각이나 의식의 형태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외부 대상을 우리의 마음 속으로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는 의미이다.
흔히 이데올로기는 정치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며, 각자가 지니는 이데올로기에 따라 법률 제도, 사회적 풍습, 정치적 관습, 예술이나 종교, 역사 등을 새롭게 해석하려고 한다.
이데올로기는 프랑스의 계몽주의 철학자 '트라시(Destutt de Tracy)'가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그는 이데올로기를 '인간의 행동을 위한 규범과 집단으로서의 사회적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트라시는 프랑스 혁명의 이념인 '자유주의'를 제시했다. 그는 인간의 자연적 본성인 이성을 토대로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자유를 바탕으로 조화로운 사회 질서를 갖추어야 함을 강조했다.
프랑스 혁명의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절대군주제와 왕권신수설 이데올로기가 붕괴되었다. 이후 민주주의, 민족주의, 보수주의와 같은 다양한 이데올로기가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19세기 이후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등장한 이후로는 이에 맞서는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새롭게 나타났다.
'마르크스(Karl Marx)'는 이데올로기를 부정적으로 파악했다. 그는 이데올로기는 인간 의식의 산물로서, '물질적 경제 구조'에 의존한다고 분석했다. 물질적 경제 구조로부터 각종 철학적, 정치적, 예술적, 종교적 관념들이 생성되는데, 부르주아지(Bourgeoisie) 계급이 물질적 경제 구조의 기반이 되는 생산 수단(공장, 토지...)을 독점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것에서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기존의 이데올로기는 부르주아지 계급의 이익을 사회 공동의 이익으로 위장시켜, 왜곡된 현실을 보편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즉, 이데올로기는 기존의 지배체제를 유지하고 안정시키는 것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마르크스는 궁극적으로 인간을 구속하는 이데올로기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마르크스의 사상은 당대 서구 사회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이는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의 차가운 대립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마르크스가 주장한 공산주의 사상은 정작 자신이 그토록 비판했던 이데올로기를 새롭게 만들어낸 것에 불과했다. 그의 사상도 결코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이데올로기를 통해 존재에 근본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또한 사회 구성원 간의 공감대를 형성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사회를 변화시키도록 노력하는 것에 기능한다. 또한 이데올로기를 기준으로 다양한 사회 현상을 이해하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그러다보니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갈등 관계가 발생하게 된다.
한 마디로 정의하면, 이데올로기는 '사회가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가?'에 관한 나름대로의 설명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윤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
앞서 '도덕과 윤리의 차이점'에서 밝혔듯이, 윤리는 자신의 가치관을 분명히 다져갈 학생들에게 어떤 행위가 옳은 것인지 정당화할 근거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즉, 윤리를 공부한다는 것은 수많은 사상가의 고뇌 끝에 내놓은 생각을 바탕으로 나름대로의 세상을 해석하는 방법을 이해하며,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독서와 사색, 교육과 훈련으로 얻어지는 정보는 내적 사고를 통해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새로운 이치는 내면에 스며들어 성찰할 때 비로소 참된 지식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외부의 정보를 자신에게 의미있도록 재창조를 해내야 한다. 단순히 다른 사람의 의견에 휘둘리거나, 흘러가는대로 사는 것은 내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인터넷 상의 여론은 위험하다. 최근 인터넷은 알고리즘의 발달에 따라, 자연스럽게 내 생각과 비슷한 사람들과 맞는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오래 활동할수록 내 취향에 맞는 유머, 정보, 정치와 관련된 내용만을 선별적으로 취하면서, 점차 자신이 자주 접속하는 커뮤니티에 왜곡된 소속감을 느낀다. 자신의 주관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사람들은 커뮤니티에 접속할수록 편향된 사고를 가질 수 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인생은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흘러가게 된다. 흐르는 물결에 몸을 그대로 맡기면 당장은 편안하지만, 실은 죽은 물고기만이 물결을 거스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흘러가는 법이다. 추운 겨울날 이불 밖을 나서는 용기, 신 레몬을 한 입 베어무는 용기 정도만 있어도 충분히 윤리를 공부할 능력을 갖추어 내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