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eases: 2016.08.16
Genres: Alternative R&B, PBR&B
* Track List
1. Nikes
2. Ivy
3. Pink + White
4. Be Yourself
5. Solo
6. Skyline To
7. Self Control
8. Good Guy
9. Nights
10. Solo(Reprise)
11. Pretty Sweet
12. Facebook Story
13. Close to You
14. White Ferrari
15. Seigfried
16. Godspeed
17. Futura Free
"흰색 도화지 위에 켜켜이 쌓아 올린 무채색 응어리들의 형언"
싱어송라이터 프랭크 오션은 10대부터 가사를 쓰며 일찍이 음악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20살 때 이미 프로듀싱과 작곡 능력을 인정받았으며, 여러 유명 아티스트와 곡 작업을 진행했다. 믹스테이프 『Nostalgia, Ultra』를 발표한 이후부터 서서히 대중들로부터 인정받기 시작했으며, 이후 자신만의 음악 활동을 위해 본격적으로 앨범 작업에 들어갔다.
프랭크 오션의 첫 번째 앨범 『channel ORANGE』는 개인적인 시선에서 사랑과 사회를 바라보는 독특한 서사를 풀어나갔다. 그의 음악은 자기성찰적인 면이 돋보인다. 기존의 R&B는 재즈와 펑크 멜로디 위에서 뛰어난 가창력과 기교를 뽐냈지만, 프랭크 오션은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는 듯 나른한 목소리로 노래한다. 내면의 불안과 혼돈을 극복하기 위해 쾌락에 젖지만, 이내 그것은 공허한 것임을 자각한 '쓸쓸함'을 이야기한다. 신디사이저를 적극 사용한 몽환적인 멜로디 위에 읊조리듯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의 음악은 새로운 장르 'Alternative R&B(PBR&B)'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선언했다.
프랭크 오션의 두 번째 앨범 『Blonde』는 『channel ORANGE』보다 개인적인 영역으로 더욱 깊이 들어간다. 1집에서도 신디사이저를 활용한 앰비언트적인 사운드가 돋보였지만, 『Blonde』는 과감하게 드럼 비트를 생략해버리거나 보컬의 피치를 올리는 등 특이한 효과음을 사용하면서 오롯이 내면의 고통과 아픔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렇다면 프랭크 오션은 왜 그렇게 자신의 마음이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고 끊임없이 노래하는 것일까?
프랭크 오션은 텀블러 편지를 통해 자신이 양성애자임을 고백하며 커밍아웃을 했다. 그의 성적 지향성은 '젠더 플루이드'라고 하는데, 이는 성 정체성이 남성과 여성으로 물 흐르듯이 계속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이 '게이'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워하는데, 스스로를 젠더 플루이드라고 자각한다는 것은 자신마저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매우 혼란스러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남성다움'을 중시하는 흑인 커뮤니티 내에서도 이러한 성 정체성은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프랭크 오션은 인생 내내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근본적인 존재의 고독함을 느껴왔을 것이고, 바로 여기에서 그의 우울함이 기인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앨범 커버에는 'Blond'라고 되어 있지만, 공식적인 앨범명은 'Blonde'이다. Blond는 금발 남성을 의미하고, Blonde는 금발 여성을 뜻한다. 이렇게 앨범 커버와 앨범명의 표기를 의도적으로 다르게 하여, 자신이 남성도 여성도 아닌 혼란스러운 성 정체성을 지니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앨범 커버에서 녹발을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프랭크 오션 본인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금발이 산화되어 녹발로 바뀌는 사례에서 유추해보아 순수함을 잃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퀴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사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프랭크 오션은 아주 섬세하게 감정선을 표현한다. 그는 자신의 성 정체성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의도적으로 연인의 성별을 알 수 있는 표현을 최대한 지양함으로써 사랑이라는 감정 그 자체에 집중했다. 즉, 사랑과 이별과 같은 경험들은 이성애자만의 특권이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인류의 보편적인 감정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Blonde』는 신디사이저 위주로 구성된 미니멀한 사운드로 구성되어 있다. 특별하게 가창력을 뽐내는 트랙도 없고, 한 번에 꽂히는 중독적인 후렴도 없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처음 이 앨범을 들었을 때는 다소 지루함을 느꼈고, 도대체 이 앨범이 왜 명반으로 칭송받는지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 홀린 듯이 헤드폰을 쓰고 첫 트랙을 재생한 순간 첫 번째 트랙 'Nikes'가 가슴을 탁 치면서 다가왔다. 그 이후로 『Blonde』는 내가 가장 아끼는 앨범이 되었다.
밋밋해 보이는 사운드에 조용히 귀를 기울여보면, 작은 소리 하나하나도 매우 섬세하게 다루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마치 흰색 도화지에서 의식의 흐름대로 되뇌이면서 점점 무채색으로 채워지는 기분이 든다. 이처럼 그의 음악은 단순히 귀로 전달되기 보단 시공간적으로 전달되는 듯이 무척 입체적이다. 실제로 인터뷰에서 『Blonde』는 자신의 경험을 '시각적인 음악'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프랭크 오션의 가사는 은유로 가득 차 있어서 해석을 보아도 쉽게 의미를 파악하기 힘들다.
그는 과거와는 달리,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공허하다는 우울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끝없는 이별과 상실감 속에서도 영원한 사랑을 믿고 있다. 무의미한 세상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모든 것을 후회하지만 절망하지는 않는다. 나약함 속에서도 아직 나는 존재하고 있다고 외치고 있다.
프랭크 오션은 『Blonde』에서 약과 술에 잔뜩 취해 횡설수설하며 물질적 쾌락주의를 비판한다.(Nikes) 정신을 차린 그는 사랑했던 연인과의 아름답던 관계를 회상하며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었음을 느끼고 절규한다.(Ivy) 이윽고 사랑하는 사람과 드라이브를 하며 아름답게 내려앉는 일몰의 하늘을 함께 바라보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추억을 회상한다. 그 때의 하늘은 분명 분홍색과 흰색이 뒤섞여 있었고, 땅은 검정과 노란색으로 눈 앞에 나타났다.(Pink + White)
코카인과 마리화나를 복용하지말라는 어머니의 걱정스런 음성 메시지를 뒤로 한 채(Be Yourself), 이제 홀로 남겨져도 괜찮다고 애써 되뇌이며 마리화나를 피운다.(Solo) 어머니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약에 의존하면서 나른하고 외롭게 밤을 지새기도 한다.(Skyline To) 약에 취해 몽롱한 상황에서도 과거의 망가진 관계를 끊임없이 떠올리며 "너의 미성숙함으로 인해 내가 자제력을 잃게 되었다."고 상대를 탓하며 흐느낀다.(Self Control) 이후 다른 사람과 짧은 만남을 갖기도 해보지만 근원적인 외로움은 쉽게 채워지지 않고 이내 다시금 공허해질뿐이다.(Good Guy)
야근 근무를 하며 힘든 밤을 보냈지만 함께 했던 과거의 관계를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으며(Nights), 때묻지 않은 순수한 이상향을 상징하는 '흰색 페라리'를 꿈꾸며 옛날의 순수함을 되찾길 원한다.(White Ferrari) 북유럽의 용감한 전사 '지크프리드'처럼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젠더 플루이드)를 마주하는 용기를 지니고, 삶의 어느 부분에서 아이를 낳고 정착하고 싶어한다.(Seigfried) 스스로를 이해하게 된 그는 이제 더 이상 누구도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자신을 떠나간 모든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한다.(Godspeed) 이후 유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지나온 삶을 반추하며, 아직은 인생이 살 만하기에 지금의 자신이 되도록 이끌어 준 모든 것에 감사한다.(Futura Free)
『Blonde』의 전반부는 자기 자신도 스스로를 오롯히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여 온통 흐릿하고 몽롱하고 혼란스럽다. 그러나 Nights의 3분 30초에서 비트가 바뀌는데 이는 정확히 앨범의 중간 지점으로, 앨범의 전후반부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뀔 것을 예고하는 것이다. Nights의 비트가 바뀌는 앨범의 후반부부턴 점차 스스로의 내면을 돌아보면서, 마침내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는 『Blonde』에서 프랭크 오션의 모든 것을 들었지만, 여전히 그에 관해서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다. 이것이 이 앨범을 특별하게 만드는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된다.
해가 길어지고 잠이 오지 않는 여름 밤에 차분한 마음으로 『Blonde』를 재생해보자.
해석된 가사를 천천히 읽어보며 음악에만 오롯이 몰입해보자.
한 사람이 지닐 수 있는 복잡한 감정의 깊이와 이를 음악의 형태로 온전히 담아낸 프랭크 오션의 예술혼에 감동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