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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리뷰] Marvin Gaye의 『What's Going On』

 


Releases: 1971.05.21
Genres: Soul, R&B

* Track List

1. What's Going On
2. What's Happening Brother
3. Flyin' High(In the Friendly Sky)
4. Save the Children
5. God is Love
6. Mercy Mercy Me(The Ecology)
7. Right On
8. Wholy Holy
9. Inner City Blues(Make Me Wanna Holler)






"고통과 증오를 사랑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위로하는 따뜻한 영혼의 울림"


싱어송라이터 마빈 게이는 뛰어난 보컬과 작곡, 프로듀싱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 위대한 소울 뮤지션이다. 그는 수많은 개인적인 어려움에 직면하면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이를 아름다운 음악으로 승화시키며 장르 이름 그대로 '소울'에 가장 부합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랫동안 음악적으로 함께 한 파트너 '타미 터렐'의 죽음, 코카인 중독, 여러 차례의 자살 시도, 비극적인 죽음과 같은 험난한 개인사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순수하게 음악 자체만으로 충분히 위대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아티스트이다.

마빈 게이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목사로 지내던 교회에서 성가대로 활동하며 탁월한 보컬리스트로서의 역량을 보였다. 이후 디트로이트 공연에서의 그의 뛰어난 보컬 퍼포먼스는 이내 프로듀서 '베리 골디'의 눈에 띄게 되었다. 당시 베리 골디는 흑인 아티스트들을 위한 레이블 '모타운(Motown)'을 설립하려고 계획했는데, 이 때의 인연으로 마빈 게이는 베리 골디의 누나인 '애나 골디'와 결혼하게 되었다.(마빈 게이와는 무려 17살 연상이다.)

모타운은 소울과 R&B 장르를 기반으로, 재능있는 흑인 뮤지션들을 모아서 백인 사회에도 먹힐 수 있는 대중적인 음악을 지향했다. 대표적인 소속 아티스트로 마빈 게이 외에도 스티비 원더, 잭슨 파이브, 마이클 잭슨, 보이즈 투 맨, Ne-Yo 등이 있었다. 미국 본토에서 모타운의 위상은 소속 아티스트 명단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상상 그 이상이었다. 우리나라의 흑인 음악 스타일을 지향하는 나얼, 박진영, YG 엔터테인먼트 등에서도 직간접적으로 한국의 모타운이 되기를 원한다고 했을 정도이다.

모타운은 대중성을 지향하다보니, 주류 문화에 받아들여지기 위해 흑인 음악 위에 백인 음악의 작법을 받아들였다. 이는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불러일으켰으나, 아이러니하게도 '흑인다움'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흑인 아티스트들은 모타운에 의해 자신들의 고유한 개성(흑인다움)을 발휘하는 것을 금지당했고, 항상 교양과 격식이 있는 태도(백인다움)를 고수할 것을 강요당했다. 심지어 모타운은 상업적으로 이익이 되는 사랑 노래만을 강요하면서, 소속 아티스트들을 히트곡 제조기로만 간주했다. 즉, 흑인을 착취하는 흑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What's Going On』은 이러한 혼란스러운 레이블 분위기 속에서 탄생한 앨범이다.
마빈 게이는 베트남 전쟁에 3년 동안 참전한 형제 Frankie의 경험을 듣고 당대 미국이 겪고 있던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과감하게 사회적 메세지를 주제로 한 앨범을 기획했다. 모타운의 창업주 베리 골디는 사회적 메세지를 담은 음악은 결코 잘 팔릴 수 없다며 격렬하게 반대했지만, 마빈 게이는 이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앨범 제작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 『What's Going On』은 상업적 뿐만 아니라 비평적으로도 엄청나게 성공하게 되었고, 레이블과의 갈등 속에서도 뮤지션으로서의 진정한 권리를 확보함으로써 후세대의 아티스트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What's Going On』은 소울, 재즈, 가스펠, R&B등 다양한 음악 스타일을 부드럽게 융합한 혁신적인 앨범이다. 켜켜이 쌓여있는 풍부한 악기 소리와 그 위를 부드럽게 수놓는 아름다운 마빈 게이의 목소리는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9개의 트랙 및 35분도 채 되지 않는 러닝타임에도, 하나의 연속된 노래처럼 물 흐르듯이 흘러간다. 장엄한 스트링과 재즈 리듬의 호른, 독특한 콩가 퍼커션 리듬 사이의 촘촘한 틈을 매우며 흥얼거리는 따뜻한 보컬은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차근차근 레이어를 쌓아간다. 여러 악기들이 각자의 소리를 내면서 독특한 방식으로 상호작용을 이루는데, 무거운 주제 의식을 다루고 있음에도 고유의 흥겨움을 잃지 않는 특별한 느낌과 깊이를 부여한다.

마빈 게이는 『What's Going On』에서 베트남 전쟁을 겪은 참전 용사가 목격한 흑인 빈민가인 게토(Ghetto)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불평등을 노래한다. 사회적 메세지를 담고 있지만, 이를 계몽적으로 다루거나 훈계하려고 하지 않고 오직 개인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본다. 화자는 거대한 부조리 속에서 어떻게 할 수 없는 개인의 무력감을 느끼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고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희망을 품으며 경쾌하게 노래한다.

전쟁과 빈곤, 인종 차별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팽배하기에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며(What's Going On), 전쟁을 겪고 온 군인이 목격한 미국 사회의 암담한 현실을 직시한다.(What's Happening Brother) 이러한 현실은 근본적으로 게토의 열악한 환경에 있음을 인지하며, 수많은 흑인 형제들이 겪고 있는 끔찍한 마약 중독을 벗어나고(Flyin' High),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주어야 극복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Save the Children)

세상의 수많은 악은 오직 서로에 대한 사랑과 신에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음을 강조하며(God is Love), 푸른 하늘이 사라지고 수은으로 가득찬 바다를 치유해달라는 간곡한 기도를 올린다.(Mercy Mercy Me) 사회를 정의롭게 변화시키기 위해선 함께 단합하여 기도하고 행동하는 것뿐임을 깨닫고(Right On, Wholy Holy), 도시의 빈곤과 암울한 경제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지녀야 된다는 메세지를 전달한다.(Inner City Blues)

50여년이 지났어도 『What's Going On』이 담고 있는 주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당대의 미국 사회에 비해 오늘날은 많은 것이 변했지만, 여전히 우리 세상은 수많은 결함과 고통이 존재한다. 그러나 마빈 게이는 진정한 사랑은 언제나 증오를 이길 수 있다고 강조하며, 고통받는 이들을 음악으로 구원하고자 기도한다. 그의 목소리는 상냥하게 들리지만 강렬한 호소력이 있으며, 아름다운 선율 위에 놓인 그의 숭고한 메세지는 영혼이 있는 사람이라면 느끼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깊은 울림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