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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리뷰] Linkin Park의 『Hybrid Theory』

 


Releases: 2000.10.24
Genres: NU Metal

* Track List

1. Papercut
2. One Step Closer
3. With You
4. Points of Authority
5. Crawling
6. Runaway
7. By Myself
8. In The End
9. A Place for My Head
10. Forgotten
11. Cure for the Itch
12. Pushing Me Away






"밀레니얼 세대의 불안정한 감정을 잔뜩 뒤섞어 표출한 성공적인 음악 이론"


나의 10대 시절은 항상 '스타크래프트 리그'와 함께였다. 밥을 먹을 때마다 온게임넷과 MBC게임을 항상 틀어놓았고, 프로게이머들의 빌드 오더를 연구하면서 학교 친구들과 함께 토론했다. 방과후나 주말에는 피씨방에 출석하는 것이 일상이었으며, 스타크래프트의 실력이 곧 인기의 척도나 다름없었다. 당시 스타크래프트 리그에서는 매 시즌마다 오프닝 음악을 강렬한 락 음악으로 선곡했는데, 특히 뉴 메탈(NU Metal)장르를 많이 사용하곤 했다. 따라서 나와 동년배들은 이런 뉴 메탈 장르가 익숙할 것이다.

린킨 파크(Linkin Park)의 『Hybrid Theory』는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들었던 락 앨범이다. 당시 겁 없던 13살 꼬맹이는 종종 혼자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서 이곳 저곳을 구경했다. 그러던 중 홀리듯이 한 음반 가게에 들어가보았다. 음반 가게 사장님도 어린애가 기웃거리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했는지, 매장 CD 플레이어에 한 앨범을 재생시켜 들려주었다. 그것이 바로 이 앨범 『Hybrid Theory』였고, 이로 인해 나의 음악 인생은 송두리 째 바뀌게 되었다.

1990년대는 다가올 2000년도를 맞이하여 세기말 감성이 지배하던 시대였다. 90년생으로서 지금 그 당시를 회상해보면, 상당히 기묘한 컨텐츠들이 쏟아져 나왔던 것 같다.(지구 종말,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Y2K, 엽기, 매트릭스, 신세기 에반게리온...) 세기말의 불안함과 새시대의 기대가 복잡하게 공존하고 있던 1999년의 혼돈은 무사히 2000년을 맞이하면서 사라지게 되었다.

이제 새로운 밀레니얼 세대가 도래하면서 각종 사이버 컨셉의 컨텐츠가 범람했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낙관과 희망이 부상했다. 사실 1999년이나 2000년이나, 특정 연도를 기원으로 수를 세는 방법에 불과하기 때문에 서력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새 천년을 맞아 새로운 것들에 갈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이에 부합하듯이 특이한 문화가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바로 이 때, 기존의 다양한 문화들이 서로 융합하면서 독특한 정체성이 형성되기도 했다. 린킨 파크의 『Hybrid Theory』도 이런 혼란스러운 시대에 등장한 앨범 중 하나이다.

린킨 파크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Agoura High School을 함께 다니던 마이크 시노다(Mike Shinoda), 브레드 델슨(Brad Delson), 롭 버든(Rob Bourdon)이 밴드를 결성하면서 시작하였다. 그들은 여러 시행착오 끝에 적절한 보컬을 찾고 있던 중, 그런지 장르의 음악을 하고 있던 체스터 베닝턴(Chester Bennington)을 소개받았다. 멤버들은 체스터의 강렬하면서도 아름다운 노래 스타일에 매력을 느껴 즉시 보컬로 영입했다.

처음 밴드의 이름은 본 앨범명과 같은 'Hybrid Theory'였다. 그들은 데뷔를 앞두고 자주 공연하던 클럽 앞의 'Lincoln Park'의 이름을 따서 'Linkin Park'로 그룹명을 수정했다. 이후 여러 레코드사와 연락한 끝에 '워너 브라더스 레코드'라는 대형 소속사와 계약하게 되었다. 워너 브라더스는 마이크를 탐탁치 않아했지만, 1집의 주요 노래들을 마이크가 작곡했기에 소속사와 멤버들 간의 갈등이 빈번히 발생했다. 마침내 멤버들은 마이크가 작곡한 노래들을 잘 다듬어서 데뷔 앨범 『Hybrid Theory』를 발매하게 되었고, 이들의 앨범은 나오자마자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다.(현재까지 누적 약 3,000만 장이 판매되었다.)

『Hybrid Theory』는 체스터 베닝턴의 강렬한 보컬을 중심으로, 얼터너티브 록, 그런지, 힙합, 일렉트로닉, 디제잉, 샘플링 등의 다양한 장르가 융합된 독특한 스타일의 앨범이다. 앨범 커버엔 날개를 단 군인이 깃발을 들고 전투적으로 서있다. 이는 군인의 강렬함과 날개의 부드러움을 표현한 것으로, 『Hybrid Theory』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잘 나타냈다고 생각된다.

『Hybrid Theory』의 앨범명 그대로 혼합물, 잡종스러운 수많은 소리들이 다채롭게 혼용되어있다. 린킨 파크는 이 앨범으로 인해 자신만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었고, 앞으로의 음악 작업에 있어서 중요한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데뷔 앨범밖에 없는 밴드였지만 엄청난 인기로 인해 계속 투어를 돌다보니, 그들의 2집 앨범은 무려 3년 뒤에나 발매하게 된다.

『Hybrid Theory』는 인간 관계에서의 갈등(One Step Closer, Crawling, Forgotten), 왜곡된 관계(Points of Authority, A Place for My Head, Pushing Me Away), 반복된 실패(Papercut, With You, By Myself, In The End) 등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이러한 주제는 체스터 베닝턴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비롯되었으며, 억눌린 분노와 좌절, 우울함과 같은 어두운 분위기를 솔직하게 표현함으로써 대중의 호응을 얻었다. 디스토션이 잔뜩 걸린 기타톤은 거칠지만 세련된 멜로디 라인을 보여준다. 특히 청소년 시절의 아픔과 고통을 표현하는 감정선이 뛰어난데, 나이가 든 지금에도 이 앨범을 들어보면 10대 시절의 풋풋하고 어설펐던 감정들이 그대로 떠오른다.

그들의 음악 스타일은 새로웠지만, 지나치게 실험적이거나 과감한 시도를 하진 않았다. 노래 구조는 전형적인 전주 - 랩 - 싱잉 - 랩 - 싱잉 - 스크리밍의 정석 구조를 보여준다. 어두운 주제의 음악을 하지만 캐치한 기타 리프로 인해 팝스러운 느낌도 은근히 난다. 다운 튜닝이 된 기타와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디제잉,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스크래치는 린킨 파크만의 개성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특징으로 인해 '정통 메탈팬'들은 린킨 파크의 음악을 '메탈'로 인정할 수 없다며 비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린킨 파크의 대중성으로 인해 수많은 락키드를 양산할 수 있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Hybrid Theory』 앨범이 상업적, 대중적으로 너무나 크게 성공하다보니, 다른 밴드들은 린킨 파크와 비슷한 스타일을 모방하려고 시도했다. 이 때문에 뉴 메탈 장르는 2000년 초반까지 전성기를 누렸지만, 다들 비슷비슷한 사운드와 스타일을 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고 빠르게 몰락해버렸다. 린킨 파크 역시 2003년에 발매한 2집이 1집의 자가복제라는 비판을 받았으며, 자신들의 데뷔작을 뛰어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이후 그들은 3집 이후부터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적인 장르를 시도하려고 애를 썼다.

수많은 뉴 메탈 밴드 중에서 린킨 파크가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단연 '체스터 베닝턴'의 보컬 덕문이다. 체스터의 보컬 스타일은 기본적으로 미성이다. 고음과 저음을 자유롭게 내는 아름다운 목소리에, 강렬하고 거친 스크리밍까지 다양한 음역대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그의 스크리밍은 날카롭지만 섬세하게 음 조절도 가능하여, 내면의 분노를 감정적으로 잘 표현할 수 있었다. 폐활량과 체력도 몹시 뛰어나, 공연하는 내내 온 무대를 뛰어다니면서 포효했다.

체스터의 어린 시절은 언어 폭력과 성적 학대로 고통받았다. 그는 어두운 정신 세계로 인해 코카인과 메스암페타민과 같은 중독성이 심한 마약에 빠지기도 했지만, 음악 활동을 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노력했다. 안타깝게도 체스터 베닝턴은 2017년 7월 20일, 자택에서 목을 맨 채로 숨졌다. 마약 복용은 하지 않았으나 빈 술병이 있는 것으로 추측컨대, 음주로 인한 자살로 보였다. 7월 20일은 체스터가 평소에 친하게 지내고 있었던 친구이자 우상인 크리스 코넬(사운드 가든, 오디오 슬레이브의 보컬)의 생일이었다.

체스터가 죽기 두 달 전인 2017년 5월 18일, 크리스 코넬이 목을 매 자살한 뒤로 체스터는 줄곧 우울증을 앓았다고 한다. 이에 크리스 코넬의 생일인 7월 20일, 혼자 술을 마시다가 충동적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유년 시절의 어려움과 마약 중독도 이겨낸 강한 의지력을 지닌 체스터인만큼, 그의 죽음은 몹시 안타까웠다. 이후 린킨 파크는 현재 활동은 하고 있지 않지만 아직 완전히 해체한 상태는 아니다. 마이크 시노다는 인터뷰에서 적절한 보컬이 함께 한다면 활동을 이어갈 수도 있다고 응답하며 열린 대답을 한 상태이다.

나의 10대 시절을 함께 한 뉴 메탈, 그 중에서 린킨 파크는 영원히 내가 좋아할 장르인 락에 대한 관심을 가져와주었다. 비록 예전만큼 자주 찾아듣진 않지만, 아직도 가끔씩 린킨 파크의 음악을 들으면 옛 생각이 나서 고개를 흔들곤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지금까지 들어온 어떠한 음악 앨범보다도 나에게 큰 영향력을 주었던 명반이자 나의 영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