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G)
20년 동안 알고 지낸 친구가 곧 결혼을 한다.
친구들 중엔 내가 결혼을 가장 빨리 했지만, 아직도 내 또래의 형누나친구동기선배후배들 중에는 미혼인 사람이 훨씬 많은 것 같다. 아무튼 우리 친구님이 청첩장을 주면서 스시 오마카세를 대접한다고 했다.
이제 고향 친구들은 서울 수도권과 지방으로 나눠져서 살게 됐는데, 나이가 들수록 이런 일이 아니면 모이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이 날은 지방에 사는 친구들끼리 모여서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오마카세는 다소 생소한 용어였지만,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여 여행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의 '보복 소비'를 이유로 갑작스레 수요가 증가하며 인기가 많아졌다. 일본어로 '맡기다'라는 의미의 마카세루(任せる)에서 명사형의 오(お)를 붙여서 오마카세(お任せ)가 되었다. 즉, 이름 그대로 주방장에게 '맡김 요리'를 일임하는 것이며, 식재료나 주요 요리 등이 주방장의 재량과 시장 사정에 따라서 메뉴가 그때 그때 바뀌는 형태의 식당이다.
사실 오마카세 식당은 한식에서도 흔히 보이는 형태이다. 소위 '이모'라고 지칭하는 주방장들이 시장에서 장을 본 것을 바탕으로 매 번 다른 밑반찬을 내오거나, 주 메뉴가 바뀌는 식으로 운영되는 식당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오마카세는 한국식 이모식당과는 조금 다르게, 정해진 손님을 받아서 특정 시간에만 운영하는 시스템이다. 이와 같은 고급화 전략에 따라 가격이 비싸질 수 밖에 없고, 재료의 맛과 주방장의 접객이 상당히 중요하다. 입소문이 조금이라도 안 좋게 난다면 가게 문을 닫아야 할테니.
스시 오마카세의 가격이 결코 저렴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점점 많아짐에 따라 새로운 업장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 대구만 하더라도 여러 식당이 있고, 장사가 잘되는 집은 예약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편의상 업장의 가격대를 기준으로 등급을 나누기 시작했다. 보통 3~6만원 사이는 '엔트리', 6~12만원 사이는 미들, 그 이상은 하이엔드급이라고 일컫는다. 보다 비싼 식당으로 갈수록 사용하는 재료와 서비스의 질이 좋아진다.
일식은 아주 단순하면서 섬세한 음식이기 때문에 재료의 질과 주방장의 실력이 중요하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일정 단계 이상은 월등한 맛 차이를 느끼기가 어려웠다. 내가 그만큼 미식가가 아니기도 하고, 물론 윗 단계의 스시집이 뛰어난 맛을 보이긴 했지만 10만원을 더 주면서까지 이런 음식을 맛보기에는 사치라고 느껴졌다.(동네 2~3만원 스시집에서도 충분히 맛있다고 느끼는 입맛이라...)
오마카세 업장을 많이 가본 것은 아니고, 가본다한들 기념일마다 미들급 정도만 몇 번 가봤기 때문에 하이엔드급 스시집이 어떻다고는 평할 수 없다. 일부 사람들은 이 문화가 허세에 가깝다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오마카세 특유의 분위기와 접객 문화, 그리고 잘 숙성된 회 요리를 맛보는 것은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준다고 느껴진다. 따라서 적어도 한 번 정도는 이 분위기를 경험해보면 좋다고 생각된다.
가게 옆 골목길에 주차할 자리가 있었다. 사람들이 붐비는 날에는 주차하기가 쉽지 않겠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가게 뒤편에도 두 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한다. 친구의 KTX가 13분이나 연착이 되서 최대한 빠르게 운전했지만 교통 체증으로 5분 정도 지각을 하고 말았다. 먼저 온 친구가 있어서, 친구편으로 일단 우리를 제외하고 다른 손님부터 진행해달라고 말씀드렸다.
스시 노토시의 가격은 런치 6만원, 디너 12만원이다. 저녁에 오면 회와 초밥이 몇 점 더 많아지고, 보다 고급 재료를 사용한다.(이는 다른 업장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해서 런치가 부실하거나 부족하다는 느낌은 받지 않는다. 웬만하면 런치도 충분하니, 가격 부담이 있다면 디너보단 우선 런치로 경험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대부분의 오마카세 식당에서는 일본식 계란찜 차완무시로 시작한다. 스시 노토시에서는 대게를 얹은 계란찜이 나왔는데 짭짤해서 식욕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나는 약간 알싸하고 매콤하게 먹는 편을 선호하여, 주방장에게 와사비를 많이 달라고 했다. 이처럼 오마카세 식당은 주방장 바로 앞에서 식사를 하기 때문에 자신의 선호에 따라서 음식을 다르게 만들어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이를테면 밥양을 줄여달라던지, 와사비를 늘려달라던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와사비는 생와사비를 직접 갈아서 제공한다. 그래서 와사비를 더 달라고 하기전에, 우선 와사비만 따로 맛을 본 다음에 요청할 것을 추천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대화를 한다고 음식 사진을 많이 찍지 못했다.)
음식의 질, 접객 서비스 모두 무난했다. 숙성회를 기본으로 하다보니 감칠맛이 뛰어났고, 친절하게 메뉴를 소개해주시는 주방장님도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가 오랜만에 만나다보니, 너무 우리끼리만 이야기를 해서 최소한만 접객을 해주시는 배려가 느껴졌다.
식사는 한 시간 반 정도 진행되었다. 양은 부족하진 않았지만 엄청 많지도 않아서 적당히 배가 불렀다. 밥양이 조금 적게 나온다고 느껴졌지만, 코스 요리가 잘 나와서 충분했다. 아마 밥양이 많았다면 다 못 먹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차를 가져오지 않았다면 시원한 맥주랑 먹었을 텐데... 유일하게 이 부분에서 아쉬움이 남았다. 이후 여러 점의 회와 스시를 뒤로 한 채, 메밀 소바와 계란 카스테라, 유자 샤베트를 끝으로 긴 식사가 마무리됐다.
좋은 날에 좋은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해서 무척 기분이 좋았다.
친구의 결혼을 축하하며, 다음에 더 좋은 식당에서 함께 모이길 기원한다.
* 주소: 대구 수성구 동원로 18 스시 노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