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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유토피아를 찾아서 - 북유럽 복지 제도의 이면

 



    "From the Cradle to the Grave"

    요람은 갓난아기가 처음으로 가지는 집이다. 과거에는 지푸라기를 꼬아서 만들었고, 오늘날은 작은 침대처럼 만들어서 아기에게 안정감을 준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슬로건은 영국의 '베버리지 보고서'에서 비롯되었다. 국가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개인의 복지를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사회복지제도의 목표를 간결하게 한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1942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의 경제학자 '윌리엄 베버리지'는 전쟁 이후의 빈곤과 극심한 경제 대공황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사회보장제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20세기 초까지 대부분의 서구 국가 체제는 '자유방임주의'였다. 자유방임주의는 국가의 역할은 국방과 치안만을 제공하는 '야경국가'로서, 국가는 안정을 위한 최소한의 기능을 하고 그 이외의 모든 기능은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 논리에 맡기자는 정부 형태를 지향했다. 그러나 자유방임주의는 계속되는 불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고, 결국 극심한 빈부격차를 야기했다.

    베버리지가 작성한 보고서, '베버리지 보고서'는 제거해야 할 다섯 가지 악으로 '궁핍, 질병, 무지, 불결, 나태'를 제시했다. 이에 따라, 국가는 건강 보험, 실업 보험, 국민 연금과 같은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후 보고서의 내용은 수많은 나라의 복지 정책에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오늘날 이를 가장 잘 실행하고 있는 나라가 북유럽으로 파악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가장 성공적인 복지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국가는 북유럽이다. 특히 북유럽 가운데 스웨덴의 복지 제도가 가장 우수하다고 알려져있다. 스웨덴은 '국민의료보험'에 의해 1년에 45만 원만 부담하면 대부분의 의료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완전무상교육'을 지향하며,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무료로 교육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고 학용품도 무상 제공된다. 상위 10%와 하위 10%의 소득격차는 3.4배에 불과하고, 퇴직 이후에 지급되는 연금은 기존 급여의 절반 가까이 보장되기에 실직이나 퇴직을 걱정하지 않는다.

    스웨덴을 위시한 북유럽은 풍부한 천연 지하자원을 바탕으로, 자원 수출 및 자원 가공 기술이 발달해있다. 특히 중공업이 발달해있는데, 대표적인 기업으로 이름만 들어도 다들 알고 있는 H&M, 이케아, 볼보 등이 있다. 북유럽 국가들은 안정된 자원으로 일관된 경제 성장을 이루어냈으며, 노동자 계급은 다른 서구 국가에 비해 균등한 월급을 받으며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런 설명을 들으면 마치 북유럽은 유토피아와 같다. 그러나 처음부터 북유럽의 복지가 발달한 것은 아니였다.


    북유럽의 지리적 특성으로 일상의 날씨가 음울하고 어두운 편이라 농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과거 북유럽에 살았던 거주민들은 교역, 약탈, 용병 등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바이킹'이 북유럽 사람들의 조상이다. 바이킹들은 배를 타고 다니면서 유럽 전지역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19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북유럽의 발전은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상당히 늦은 편이었다.

    운이 좋게도 여러 여건이 잘 맞아떨어져, 세계 대전 이후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산업 체계가 정비되었다. 북유럽 국가들은 지정학적 특성으로 세계 대전에 참여하지 않아서 전쟁의 소용돌이에 직접적으로 휘말리지 않았다. 그들은 중립국으로서 전쟁 중에 양측 모두 물자를 수출하며 막대한 이득을 거두었다. 또한 전쟁 이후에도 막대한 천연자원을 바탕으로 전 유럽에 복구 물자를 공급하면서 지속적인 자본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독일에서 도망친 기술자들을 적극 유치하여 중공업 분야의 발전을 통한 꾸준한 경제 성장을 이루어내었다.

    당시 스웨덴은 빠르게 부유해졌지만 노동자들에 대한 대우는 상당히 열악했다. 자본을 독식하고 있는 기존의 귀족 계층은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해주는 보험 제도는 존재하지 않았고, 경제적으로도 불평등이 심각했다. 심지어 투표권도 차등적으로 부여됐는데, 남성 중 20%만 투표권이 있었고 많은 재산을 가질수록 더 많은 정치적 발언권과 표를 행사할 기회가 주어졌다.(무려 54개의 투표권을 지닌 사람도 있었다.)

    사회민주노동당



    자본주의의 급속한 성장은 착취와 빈곤으로 이어졌다. 이때, 독일의 정치 사상가 '카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비판하며, 자본주의 체제를 공산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중간 단계로 규정했다. 이러한 마르크스의 사상은 마르크스의 사후에도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다. 특히 그의 사상은 러시아 제국의 '블리디미르 일리치 레닌'이라는 사람이 계승하여,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키고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을 건국하기에 이르렀다.


    폭력 혁명을 중시하는 기존의 사회주의 집단과는 달리, 마르크스 사상을 새롭게 해석하는 정당들이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중 독일의 '사회민주노동자당'이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마르크스 및 엥겔스와 활발히 교류했던 '베른슈타인'은 마르크스의 사상을 현실에 맞게 재해석했다. 베른슈타인이 바라본 자본주의 체제는 공산주의로 가기 위한 중간 단계가 아니라, 오히려 유기적 생명체로서 새로운 양상을 창조해내고 있었다. 자본주의에서 드러나는 갈등은 단순히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이원적 구조가 아니었다.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새로운 계급 구조가 등장하고 성장해갔으며 자체적으로 혁신을 이루어내기도 했던 것이다.

    베른슈타인은 마르크스주의가 강조하는 '프롤레타리아 폭력 혁명'을 과감하게 폐기하고, 노동자 계급의 정치 진출을 통한 '사회주의 국가 실현'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즉, 공산주의 혁명을 실현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인민들의 삶을 지속적으로 개선해나가는 실천적인 운동을 지향했다. 이에 따라, 정치적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다당제를 인정하고, 선거를 통해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무산 계급들과, 시장 경제 내에서 안정적으로 체제를 관리함으로써 민주주의적 가치를 실현하는 '사회민주주의'가 등장했다.

    사회민주주의는 마르크스주의의 폭력성을 배제하고,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해결하며 자유와 평등을 확립할 것을 지향했다. 실제로 독일의 경제 성장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노동자들의 생활 여건이 크게 개선됨에 따라 '사회민주노동자당'은 많은 의석을 확보할 수 있었다. 성공적인 정치 참여로 이어진 독일일의 사민당을 롤모델로 삼아, 1889년 스웨덴에서도 사회민주노동자당이 창당하였다. 스웨덴의 사민당 역시 선거를 통한 합법적인 사회개혁을 추구했으며, '국민의 집'을 슬로건으로 제시하며 국가는 누구도 소외하거나 차별하지 않는 따뜻한 집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복지 제도의 이면



    스웨덴의 '국세청'은 개인의 세금 납부만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것을 관리하고 있다. 스웨덴 국민들은 출생, 결혼, 사망을 국세청에 신고한다. 스웨덴의 복지 제도를 운영하기 위해 국민들이 기본적으로 납부해야 할 최소한의 세율만 32%에 달한다.(우리나라는 6.6%에 불과하다.) 전체 국민 가운데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 사람은 난민과 노동 포기자 등을 모두 포함하여 겨우 6%에 지나지 않는다. 연간 소득이 6800만 원이 넘는다면, 예외없이 연 수십 억을 버는 사람과 동일한 최고 세율(52%)이 적용된다. 또한 탈세를 막기 위해 '세금 달력'을 매년 발간하여, 모든 사람의 세금 납부 이력, 개인 정보, 소득 수준, 재산 정도, 결혼 여부 등을 기재하고 있다. 이러한 세금 달력은 3~4만 원만 내면 누구나 볼 수 있다.


    <자산 불평등 지수>

    최저 세율이 32%지만, 정규직이나 풀타임 노동자가 되는 순간부터 세율이 50%로 껑충 증가한다. 따라서 직업 간의 연봉 격차가 사실상 거의 없는 수준이며, 무슨 일을 해도 임금이 비슷하다. 다시 말해, 의대에 가거나 국가 고시에 합격해도 큰 소득 차이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스웨덴의 법인세는 20.6%에 불과하다. 상속세도 없기 때문에 상위 10%가 가계 자산의 70%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 심지어 상위 1% 부자들은 스웨덴 전체 자산의 37% 이상을 갖고 있다. 상위 계층과 하위 계층은 사실상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다. 이 때문에 부의 축적은 상속에 의해서만 가능한 상황이다. 높은 소득세로 인해 '소득 불평등 지수'는 최저 수준이지만, '자산 불평등 지수'는 최고 수준이다. 애초에 스웨덴의 복지 제도는 개인이 자산을 축적하지 않아도 국가가 보호해주는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 즉, 상위 계급에 들어갈 수는 없지만, 국민을 나락에 떨어지게 만들지 않는 복지 제도인 것이다.

    스웨덴 국민이 1년에 부담하는 병원비 상한액은 최고 15만 원이며, 약값은 30만 원이다. 그 이상을 넘어가면 모든 비용을 정부가 부담한다. 그러나 의사를 만나기 위해선 반드시 상담원을 통해야 하기 때문에 가벼운 질환으로는 예약할 수 없다. 만약 예약에 성공하더라도 의사를 만나기 위해선 최소 3일에서 한 달 정도 기다려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스웨덴 국민들은 1년에 의사를 만나는 횟수가 2~3번에 그친다. 서민들은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쉬어야 하며, 대기 없이 병원에 가고 싶은 사람들은 고비용의 민간 보험에 가입한 뒤 민간 병원에 가야 한다.




    스웨덴의 주택 임대료는 정부 규제나 개입 없이 임대인과 임차인 대표 간 협상을 통해 결정한다. 이때, 임대료 인상률은 연평균 2% 이하로 결정되어야 한다. 임대인들은 임대료를 마음대로 올려 받기 어렵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기 어려워 민간 주택 공급 시장이 위축되어있다. 스웨덴 전체 인구의 30%가 임대 주택에 거주하고 있지만, 많은 공공임대주택이 지어진 지 50여 년 이상이나 될 정도로 오래되서 대대적인 보수가 필요하다. 특히 낡고 허름한 공공임대주택 지구는 마치 슬럼가와 유사해보인다.

    대도시의 주택 공급 사정은 엄청나게 심각하다. 스톡홀름 인구의 거의 절반이 공공임대주택 입주 대기를 하고 있다. 평균 입주 대기기간이 약 11년에서 20년이므로,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대기자 명단에 올려야 한다. 스웨덴 정부는 20세기 중반에 대규모 공공임대주택 공급 정책으로 주택난을 해결하려고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대도시 가장자리에 위치한 공공임대 아파트는 이민자가 절대 다수인 동네로 변하며 지리적 차별이 심화되고 있다.


    스웨덴의 전통적인 귀족 계층은 노동자들에게 높은 급여, 안정된 근무 환경, 사회 환원을 대가로 지금의 지위를 공식적으로 보장받고 있다. 반면에 노동자 계층은 높은 복지와 삶의 질을 보장받는 대가로 현실에 만족하며 살아가야 한다. 즉, 스웨덴은 누구도 부자나 거지가 될 수 없는 사회이다. 상속 이외에는 부자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성인의 2/3가 매주 일확천금을 꿈꾸며 복권을 구매하거나 도박을 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로 인해 어디서나 경마나 카지노 광고를 쉽게 접할 수 있고, 도박 손실액도 세계 최상위권에 이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스웨덴의 훌륭한 복지 제도는 노동 생산성의 저하를 불러 일으켰고, 복지 시스템에 무임승차하는 사람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복지는 전적으로 국가가 담당한다는 의식이 있어서 민간 조직 차원의 자선 행위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심지어 스웨덴의 높은 세율로 인해 점차 많은 기업이 세금을 피하기 위해 이민을 가거나 우회를 시도하고 있다. 그로 인해 양질의 일자리가 점차 사라지고 있고, 세금 확보도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스웨덴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상속세를 폐지하고, 법인세를 20.6%로 단일화하기도 했다. 


    부유층과 기업들의 해외 이전을 막고, 사회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복지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스웨덴은 기업친화적 정책을 펼치고 있다. 최고 세율을 본다면 의외로 스웨덴과 한국의 차이가 크지 않다. 오히려 한국의 부유층이 납부해야 할 세금 부담이 더욱 큰 편이다. 스웨덴 정부는 상속세와 증여세도 2004년에 완전히 폐지하며 공식적으로 가족 내 경영권을 보장하고 재산 상속도 인정해주었다. 이런 정책을 펼치면서까지 기업이 국내에 자리잡고 있어야만 고용 창출이 이루어지고, 중산층이 막대한 세금을 납부하며 복지 제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은 소득세를 면제받는 국민이 6.6%에 불과하지만, 한국에서 소득세를 면제받는 비율은 놀랍게도 40%에 이른다. 우리나라는 소득 기준 누진세 비율이 전세계 주요 국가 기준으로 보았을 때 의외로 높은 편이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납세자의 상위 5.9%가 총 소득세수의 약 76%를 납부하고 있다. 스웨덴식 복지 제도는 저소득층을 비롯하여 중산층까지 거의 균등한 세금을 납부하여 그만큼 혜택을 받는 시스템이다. 반면에 한국식 복지 제도를 운영하기 위해선 사실상 상위 계층의 세금 납부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북유럽식 복지 제도로 운영하려고 국가 시스템을 전적으로 수정한다면, 저소득층과 중산층에 위치한 많은 사람이 반대할 것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통계로 파악한 스웨덴의 소득 격차는 아주 적은 편이다. 스웨덴 대졸자의 소득은 고졸자에 비해 22% 정도 소득이 높은데, OECD 평균 57%에 비하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이러한 통계는 성공적인 복지 제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대졸자와 고졸자의 임금 격차가 적어서 그런 것이라고 파악된다. 실제로 스웨덴의 상위 10%가 스웨덴 전체 자산의 75.3%를 차지하고 있으며, 상위 1% 부자는 전체 자산의 37.4%를 보유하고 있다.(미국의 상위 1%가 35.4%를 보유한 것보다 더욱 높은 수준이다.)


    우리는 한국의 복지 제도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시선에는 여전히 신분 상승의 기회가 열려있는 충분히 매력적인 사회로 보일 수 있다. 사실 한국의 복지 제도가 마냥 나쁜 것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제도가 잘 갖추어진 나라와 비교를 해서 좋지 않아 보이는 것이다. 북유럽식 복지 제도와 한국식 복지 제도는 뭐가 우월한 제도인지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다만, 한국에 살고 있는 국민의 입장으로 본다면 세금 면제자들의 비율을 합리적으로 조장하고, 실질적으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촘촘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즉, 복지 제도의 양적인 확대보다 질적인 면을 보완하고 내실을 다지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Utopia

    그리스어로 '어디에도 없는 장소'라는 의미를 지니며, 흔히 이상적인 국가라고 표현된다.
    북유럽이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유토피아로 비춰질 수 있겠지만, 마냥 모든 면에서 이상적인 면모만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상향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상향은 일종의 완전함으로, 우리의 선험적인 이성으로만 파악될 수 있는 추상적인 개념이다. 완전함이라는 개념은 정해진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유기체와 같이 계속해서 변화해나가는 개념이다. 따라서 우리는 현실에서 완전함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실현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따라가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즉, 이상국가를 실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더라도, 이를 실현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