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성공'이 아닌 '선한 야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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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윤리 교사로 살아가다 보면 가끔은 가슴 한구석에 자괴감이 들 때가 있습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성선설'을 목이 터져라 가르치면서도, 정작 눈앞의 경쟁에 치여 시들어가는 아이들의 눈빛을 보면 "내가 지금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뜬구름 잡는 얘기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회의감이 밀려오기 때문입니다. 성적과 대학 간판, 연봉만이 유일한 정답처럼 여겨지는 교실에서 "착하게 살아야 한다"라는 외침은 자칫 고루하고 힘없는 잔소리로 치부되기 일쑤입니다.
그러던 중 얼마 전 내한했던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했던 인터뷰가 뇌리를 스쳤습니다. "지능은 이제 흔한 상품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성공을 바라는 이타적인 인성이다."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을 이끄는 수장조차 지식보다 인간성을 가장 큰 가치로 꼽는 것을 보면서, 교실에서 흔들리던 제 교육적 신념을 조금이나마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고민을 하던 와중에 제 시선을 사로잡은 책이 바로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신작 《모럴 앰비션》이었습니다. 인간 본성의 선함을 역사적 증거들로 입증해 냈던 그의 전작 《휴먼카인드》를 워낙 깊은 감명으로 읽었던 터라, 그의 글이라면 무조건 믿고 보는 편이었습니다. 마침 인스타그램을 구경하다가 이 책의 서평단 모집 글을 보게 되었고, 간절한 마음으로 신청했는데 감사하게도 당첨되어 누구보다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1장
책의 첫 장은 '선한 야망'이라는 매력적인 단어로 포문을 엽니다. 브레흐만은 세상을 극적으로 개선하겠다는 뜨거운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흔히 도덕적으로 산다고 하면 소박하게 욕심을 비우는 삶을 떠올리지만, 저자는 오히려 야망과 이상이 결합한 자리에 커리어를 설계하라고 조언하죠.
우수한 인재들이 광고 클릭 수나 늘리는 무의미한 알고리즘 개발에 재능을 낭비하지 말고, 직접 위험을 감수하고 뛰어들어 세상을 구하는 혁신가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결국 세상은 이 선한 야망으로 무장한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바뀐다는 저자의 말에, '안정적인 직업'만을 최고의 가치인 양 지켜보았던 제 자신을 조용히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2장
2장에서 저자는 역사적인 변화를 이끌어낸 이들이 언제나 다수가 아닌 '가장 완강하고 끈질긴 비타협적 소수'였다는 점을 짚어냅니다. 슬프게도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불의를 목격해도 그저 조용히 구경만 하는 방관자가 됩니다. 사실 대세를 거스르고 잘못된 구조에 맞설 용기를 내는 것은 누구에게나 외롭고 두려운 길이니까요.
하지만 저자는 '용기도 전염된다'는 흥미로운 메커니즘을 제시합니다. 위험에 처한 이웃을 돕기 시작하고, 도움을 요청받았을 때 그것을 수락하고 계속 도우면 그 불씨가 주변으로 퍼져나간다는 것입니다. 특히 책에 나오는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선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선한 일을 하면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구절은 제 머리를 세게 때렸습니다. 저는 교실에서 아이들의 덕목을 먼저 가꾸어야 비로소 행동이 바뀐다고 굳게 믿었는데, 실상은 반대였던 겁니다.
3장
세상을 바꾸려 시도하는 이들은 종종 주변으로부터 "유난 떤다", "이상한 사람이다"라는 핀잔을 듣곤 합니다. 저자는 이러한 시선에 굴하지 않고,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다윗들이 모여 거대한 팀을 꾸려야 골리앗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저자가 던지는 질문이 뼈아픕니다. "우리 인생의 남은 주는 대략 2,500주에서 3,000주뿐이다." 이 구절을 읽는 순간 저도 모르게 제 나이를 계산하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이토록 짧고 유한한 인생 속에서 나는,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대체 무엇을 좇으며 소중한 시간을 소모하고 있는 걸까요?
4장
그렇다면 현실의 높은 벽 앞에서 어떻게 싸워야 할까요? 브레흐만은 불의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은 단순한 바람이 아닌 '도덕적 의무'라고 선언합니다. 단, 뜬구름 잡는 이상주의에 취해 있기보다는 '현실적 이상주의자'가 될 것을 권합니다. 가끔은 원하는 진짜 열매를 손에 넣기 위해 눈앞의 목표를 조금 낮추는 현실적인 타협도 필요하다는 것이죠.
무조건 100% 완벽한 정의감만 고집하다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고결한 패배자보다는, 비록 흠집이 나더라도 실제로 세상에 이로운 결과를 만들어내는 실용적인 길을 가라는 지적은 무척 신선하고 또 날카로웠습니다.
5장
다음 장에선 한층 더 가슴 뛰는 희망을 줍니다. 세상을 바꾸는 혁신이란 태어날 때부터 남다른 위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평범한 사람도 단 20분만에 세상을 바꿀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거창한 구호 없이도 적절한 방법과 도구를 발견해 마침내 큰 변화를 일으켰던 평범한 이들의 사례는 큰 울림을 줍니다. 이 부분은 아이들에게 "너희도 충분히 세상을 바꿀 주역이 될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주는 훌륭한 수업 소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6장
6장에서는 개인의 도덕적 실천을 넘어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시스템의 결함'을 의심해 볼 것을 촉구합니다. 아무리 선한 의지를 지닌 개인이라 할지라도, 구조 자체가 부조리하다면 결국 무력감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저자는 거듭 강조합니다. "혼자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반드시 팀이 필요하다."
교사로서 우리 학교의 평가 시스템이 아이들에게 연대와 협동을 가르치고 있는지, 아니면 친구를 밟고 올라서야 하는 고립된 괴물로 만들고 있는지 무거운 마음으로 되돌아보게 만드는 대목이었습니다.
7장
7장에서 브레흐만은 우리에게 가장 먼저 '낙관하는 용기'를 가질 것을 주문합니다. 기후 변화나 전쟁, 빈곤 같은 뉴스를 접할 때마다 우리는 쉽게 무력감과 냉소에 빠지곤 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낙관주의야말로 인류의 거대한 난제에 뛰어들게 만드는 진짜 용기라고 말합니다.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선한 야망에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대목이었습니다. 뜨거운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며, 문제를 실제로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발견과 발명만이 변화를 일으킨다는 지적입니다. 도덕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토론을 하다 보면, 가끔 "선생님, 어차피 세상은 안 바뀌어요"라며 일찌감치 포기해 버리는 아이들을 만납니다. 그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도덕적 훈계가 아니라, 구체적인 기술과 지식을 배워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실질적인 낙관론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8장
8장에서 저자는 매우 실용적이고 때로는 뼈아픈 조언을 던집니다.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역할을 찾되, 결코 '숫자 뒤에 숨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업의 복잡한 보고서나 지표, 통계 뒤에 숨어서 정작 자신이 세상에 미치는 진짜 해악이나 무가치함을 모른 척하지 말라는 일침입니다.
또한 "선한 야망에도 돈이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언급도 인상 깊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도덕적이거나 이타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무소유나 가난을 당연하게 요구하곤 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세상을 바꾸는 큰 선행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자원과 자본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함을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진로를 고민하며 "선생님, 착하게 살고 싶지만 가난하게 살기는 싫어요"라며 현실적인 고민을 털어놓는 제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아주 솔직하고도 든든한 조언을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9장
9장은 생각할 거리가 유독 많은 장이었습니다. 저자는 '미래의 관점에서 현재를 평가하라'고 제안합니다. 우리가 과거의 노예제나 여성 참정권 제한을 보며 경악하듯이, 과연 미래 세대는 오늘날 우리의 어떤 모습을 보며 가장 경악하게 될까 자문해 보라는 것입니다. 공장식 축산일까요, 기후 위기에 대한 방관일까요, 아니면 이주민에 대한 차별일까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일상 속에 숨어 있는 악한 관행들을 해체하고, 다음 세대로 이어질 서사의 일부가 되는 것. 환경 윤리나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 윤리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이 대목은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깊이 있는 에세이 쓰기 주제로 다루어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장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인류가 마주한 실존적 위협에 맞서 기꺼이 '선한 돌격대'가 되어 책임을 짊어지자고 호소합니다. 미래는 결국 지금 행동하는 우리에게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에필로그에서 던지는 메시지는 이 책의 요약본과도 같습니다. "완벽해지기 대신 야망을 품어라." 우리는 흔히 내가 완벽하게 도덕적인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착한 일을 할 자격이 생긴다고 오해합니다. '나는 텀블러도 매일 안 쓰는데 무슨 환경 보호를 외치겠어'라며 지레 포기하는 식이죠.
하지만 저자는 완벽해질 준비를 마치는 '충분한 때'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합니다. 즉, 부족하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지금 당장 시작하는 야망이 더 중요합니다.
결론
이 책은 단순히 "착하게 살자"는 뻔한 도덕 교과서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지 않습니다. 수많은 역사적 사례, 인물들의 실제 삶, 그리고 냉철한 통계 자료들을 촘촘하게 엮어내어 읽는 이가 반박할 틈 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듭니다. 오랜 치열한 고민 끝에 나온 아주 구체적인 실천 지침서에 가깝습니다.
전작인 《휴먼카인드》가 "인간은 생각보다 선한 존재야"라며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해 주었다면, 이번 《모럴 앰비션》은 "인간이 그렇게 선하다면, 이제 구체적으로 뭘 할 건데?"라고 우리 멱살을 쥐고 흔드는 듯한 강력한 실천력을 요구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분야에서 가장 명저라고 생각하는 책은 피터 싱어의 《실천윤리학》입니다. 싱어의 논리정연하고 빈틈없는 도덕적 엄밀함에 비하면, 브레흐만의 책은 마인드셋을 고취하기에는 훌륭하지만 너무 거대하고 구조적인 주제들을 다루고 있어 평범한 개인이 당장 내일 아침 무엇을 실천해야 할지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는 아쉬움도 조금 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책이 던진 뜨거운 질문들을 외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그저 '무해하고 얌전한 시민'이 되라고 가르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세상을 뒤흔들 수 있는 '선한 야망'을 품도록 돕는 것. 그것이 도덕윤리 교사로서 제가 짊어져야 할 기분 좋은 숙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당장 다음 주 수업 시간부터 아이들과 함께 작은 실천이라도 시작해 봐야겠습니다.